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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6 18:38 수정 : 2015.12.06 18:38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헬싱키 협약은 1975년에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조약기구 35개 회원국이 안보 협력과 평화 공존을 목표로 체결한 조약이다. 이 협약은 냉전 종식을 알리는 서막이자 동구권 붕괴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물론 1970년대 중반에는 누구도 공산권의 붕괴를 예측하기 어려웠고 냉전은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냉전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동구권 국가들은 주권 존중과 영토 보장을 포함한 헬싱키 협약에 체제 급변의 두려움 없이 서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협약이 공산권의 붕괴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주권 존중 및 영토 보장과 함께 인권과 자유 존중 등을 규정한 10개의 협력 원칙과 군사, 경제, 인도주의 교류 등 3개 분야의 신뢰구축 정책들이 동구권의 반체제 활동과 시민사회 성장에 지렛대를 제공했다는 데 있다. 최근 한국 정부의 동북아 평화 구상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 협약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약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공산권의 붕괴였다는 사실을 아는 동북아의 관련 국가들이 의도된 목적을 갖는 한국 정부의 구상에 명확한 인센티브 보장이 없다면 참여를 망설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냉전이 끝나자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도전을 물리친 자유주의의 승리에 의해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이성적 국가 수립이라는 역사의 끝이 마침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의 세계는 미국 중심의 단일 패권 체제가 이렇게 많은 통제 불가능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인종과 민족, 문화와 종교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국지적 갈등에 의해 구획되고 있다. 오늘날 국민국가의 경계를 중심으로 그 안팎에서 벌어지는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은 정확하게 자유주의 승리의 산물, 즉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에 따른 불가피한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발생, 그리고 인종과 문화의 이동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냉전 이후의 시기를 문화적 생존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은 종교적 신념과 문화적 전통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거가 되며 그의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소수 집단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종교적 신념과 문화적 전통을 포기해야 하거나 다수로부터 무시당하게 되면 그의 삶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 우월성에 근거한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동화 시도는 소수 집단에 속하는 개인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이 결국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서구의 적들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이익의 충돌일 수 있으며,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공포를 극대화시켜 실제 현실로 만들어가는 자기 충족적 예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냉전시대의 전쟁이 물리력을 독점한 국가 사이에서 대칭적으로 관리되는 것이었다면 문화적 생존과 경제적 불평등 투쟁이 결합된 새로운 전쟁은 때와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정형의 테러로 나타난다. 소형 무기와 폭탄으로 무장한 이 저비용의 전쟁은 대중의 공포와 증오를 업고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반도의 갈등이 냉전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무기 구입과 군비지출을 통해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냉전시대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국가폭력의 잔재를 국내 정치에서 다시 보는 현실은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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