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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7 18:51 수정 : 2015.12.07 18:51

성당 입구의 성모상 주변에 장미꽃이 피었다. 한두 송이가 아니다. 벌써 한 주 전에 피었는데 아침에 내린 서리로 화려한 모습은 오간 데 없이 풀이 죽은 모습이다. 3, 4월에 피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가을에도 피는 것은 이미 흔한 일이 되었지만, 5월의 꽃 장미를 초겨울에 보는 것은 처음이다. 반갑기는커녕 낯설고 불안하다.

올가을에는 벼 수확이 마무리된 11월 초부터 지금까지 한 달 동안 이틀이 멀다 하고 비가 내렸다. 기상 통계가 시작된 후로 11월 강수량은 올해가 최고라고 한다. 기온도 장미꽃이 필 만큼 따뜻해서 11월 초에 서리가 두어 번 내리고는 지금까지 이 산골에서도 얼음이 언 적이 없다. 덕분에 추위에 가장 약한 작물 중 하나인 고추는 진즉 허옇게 말라 있어야 함에도 잎이 아직 싱싱한 채로 빨간 열매를 맺고 있어서 며칠 전까지도 고추를 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철을 거스르는 날씨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농작물 중에서는 김장배추가 그 직격탄을 맞았다. 따뜻하고 습한 날씨 때문에 진딧물을 비롯해서 온갖 해충이 극성을 부렸다. 예년에 비해 방제 작업을 곱으로 해도 통제할 수 없어서 내가 심은 배추의 절반 정도는 수확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반면에 저지대 따뜻한 동네에서는 고온 때문에 밑동이 썩어 들어가는 바람에 못쓰게 된 배추가 많은 모양이다.

배추는 겨울 날씨가 되면 성장을 멈추고 잎과 줄기가 단단해지면서 단맛이 든다. 그러나 올가을에는 따뜻한 기온에 강수량도 많아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구가 된 배추는 새잎이 계속 나고 자라는데 위가 막혀 있으니 속에서 서로 엉클어질 뿐 아니라 샛노란 색을 잃고 허옇게 퍼석퍼석해져서 맛도 없어진다. 올해 일찍 김장을 한 사람들이 김치가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다가 김장김치라는 전통음식도 머지않아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난달 하순에 농협에 낸 배추를 검수하던 직원이 배추를 갈라 보며 깜짝 놀랐다. 꽃대가 오르기 시작한다며 가을배추에서는 처음 보는 일이라 했다. 가을에 수확하는 채소 중 땅에 남은 것들은 겨울 추위를 겪고 봄에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한가운데서 송곳 같은 꽃대를 올려 열매를 맺고 한살이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11월 초에 서리를 두어 번 맞은 배추가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자 봄이 온 것으로 알고 열매 맺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꽃대가 오르는 채소는 충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모든 힘을 쏟기 때문에 잎이나 뿌리는 맛과 영양을 잃어 상품이 될 수 없다.

한파와 폭염, 홍수와 가뭄 등 이상기후에 의한 재해는 이제 세계적으로 일상사가 되었다. 지난달 말부터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주관의 ‘파리 기후회의’는 그래서 모든 이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정권의 명운이 걸린 경제성장에 발목이 잡혀 의미있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거라는 비관론이 크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기후변화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월에 회칙을 발표하여 ‘정의의 새 패러다임으로서 온전한 생태계’를 제시하고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뛰어넘어 ‘생태적 회개’를 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또 특정 세력의 이익이 인류 전체의 이익보다 우선시되면 임박한 대재앙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과 선진국의 이기주의를 경고했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10위인 우리나라는 이번 파리회의의 핵심 쟁점인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구속력 문제에 대해 미국, 중국 등과 더불어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고 한다. 어찌 그러지 않았겠는가.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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