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덕분에 의료산업이 다시 등장했다. 여야 합의로 의료를 빼기로 했다더니, 대통령까지 나서서 되살려 놓았다. 노무현 정부도 찬성하던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과거 대통령이 아니라 그때의 경제 관료(그리고 동료와 후배)를 떠올린다. 정권은 유한해도 관료는 영원하다고 했던가. 겉모양만 바뀔 뿐, 기어코 의료산업을 ‘찬성’하려는 그들의 의지는 정권과 무관하다. 10년 넘게 밀어붙인 바람에 절반쯤은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서울 압구정동, 강남 한복판에 강남메디컬투어센터라는 곳이 있다. 건물 복판에 영어로 쓰고 안내판에 한글로 적어 놓아 금방 눈에 띈다. 고속철도를 타면 부산시의 의료관광 광고가 쉴 새 없이 나오고, 의료를 앞세우는 경제특구와 산업단지는 또 그렇게 많은지. 나는 실제 의료가 아니라 ‘의료산업’이라는 새 이데올로기를 팔고 있는 것으로 읽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한지 정부는 전쟁이라도 치를 태세다. 경제부처야 본래 그렇다고 치자. 보건당국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 보건복지부인지 보건산업부인지 모를 지경이다. 원격의료, 영리병원, 병원 수출, 의료관광…,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때로 돌아가는 전략도 서슴지 않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새로 만든 진입로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경제에 목을 매는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나, 번지수가 틀렸다. 아픈 사람을 볼모로 잡고 영리를 추구한다는 ‘윤리’는 잠깐 치워놓자. 의료산업‘화’나 의료산업 ‘활성화’가 말처럼 쉽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국내용, 외국용 가릴 것 없이 의료의 본질적 특성이 돈벌이용 산업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용. 복잡한 것은 빼더라도, 한 가지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의료 수출이든 환자 수입이든 사람이 옮겨 다녀야 하니, 반도체나 휴대전화와 달리 규모가 커지기 어렵고 생산성·효율성이 떨어진다. 말과 음식, 문화, 보호자까지 고려하면, 사업성은 골목 가게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증거도 있다. 복지부 발표로는 2014년 의료관광으로 올린 수입이 (겨우!) 5600억원 정도다. 건강보험 재정 대비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면, 몇몇 병원의 성공 사례는 몰라도 ‘국민경제’를 꿈꾸기는 어렵다. 국내용 산업에 대해서는 두 가지, 고용 효과와 성장 동력만 지적한다. 먼저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주장. 그럴듯하지만 숫자보다는 누가 어떤 자리를 채우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금도 이른바 ‘장롱면허’가 태반이다. 늘어난다 해도 이미 과잉 배출된 전문 직종을 흡수하는 것 말고 무슨 의미가 더 있을까. 나머지는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일자리라는 것이 더 큰 한계다. 의료산업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더 위선적이다. 산업이 확대되고 성장하려면 누군가 더 많이 소비하고 비용을 대야 한다. 어떻게 포장하든 서민의 부담이 늘지 않으면 의료산업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지출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다음으로 큰 나라다(2013년 기준). 지금보다 더 비싼 의료를 더 많이 ‘소비’하라는 것인가. 문화와 여가, 주거, 교육, 삶의 질을 희생해야 더 많이 지출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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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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