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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6 20:39 수정 : 2015.12.16 20:39

해마다 이맘때면 마지막 학기를 잘 마무리한 대학원생들이 학위논문을 제출하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학부생들이 주로 주어진 문제를 푼다면,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도교수의 도움을 받아가며) 스스로 정의해야 합니다. 의미가 있으면서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를 찾는 일이 연구의 핵심요소지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얻어낸 결과물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한 게 바로 학위논문입니다. 아울러 그 내용을 추려 학술지 논문으로 제출하기도 합니다.

논문 쓰기와 관련해 저는 대학원생들한테 늘 이렇게 말합니다. “논문도 글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나 싶지요? 하지만 이공계에선 이 논점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텍스트보단 연구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도 꽤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과거에 비슷한 주제로 썼던 논문에서 서론의 일부를 그대로 가져오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그리해도 괜찮은 걸까요? 사실 이건 연구자 공동체에서 합의하기 나름입니다. 연구 주제에 관한 설명이 특별히 새로울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자기의 과거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자 자신의 텍스트라도 인용하지 않고 그대로 써선 안 된다는 게 학술지 편집인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런 까닭에 서론의 텍스트가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로 자기 자신의 과거 텍스트를 그대로 가져오면, 텍스트 표절자의 오명을 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공계 논문도 새로 써야 하는 글입니다. 설령 학술지 편집인이 서론 텍스트의 중복성에 개의치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학생들에게 여전히 논문도 글이라 할 것입니다. 그게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학생과 지도교수가 공저자로 학술지에 영어논문을 제출할 땐, 영어가 서툰 학생들의 초안을 고치느니 지도교수가 직접 쓰는 게 차라리 더 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경우에도 교수들은 학생들이 어떤 형태로든 글쓰기에 참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최종본에 학생의 글이 별로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해도 말입니다. 자기가 쓴 초안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목격하는 일도 학생에겐 의미있는 글쓰기 공부일 것입니다. 글은 쓴다기보다는 고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논문의 내용이 표절이면 그건 부정행위입니다. 논문의 내용이 새로워도 표절한 텍스트가 들어 있다면 그것도 잘못입니다. 자기 텍스트를 다시 사용해도 허물이 되긴 매한가지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나 텍스트를 표절한 것과 똑같은 수준의 잘못이라 할 순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텍스트 재활용을 부적절한 행위 정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불성실한 글쓰기지요.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행위로도 논문은 철회될 수 있습니다. 최근 이런 일로 어릴 적부터 영재로 알려져 주목받던 학생이 박사 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파문이 일었지요. 어린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지도교수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설픈 대학원 교육 시스템에 대한 성찰도 필요한 대목입니다. 논문도 글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덧붙이는 말) 세상으로 나가는 졸업생 이야기를 하는 김에 기업 인사팀 관계자분들께 부탁의 말씀을 전합니다. 학부 4학년 학생들은 기말시험도 치러야 하고, 대학원생들은 학위논문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12월초부터 출근해야 한다면 학생이나 선생이나 다 당혹스러울밖에요. 오늘 합격 통지하고 다음주부터 나오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완성된 학위논문을 대학에 제출하는 시점은 보통 1월초입니다. 신입사원들의 입사일을 정할 때 기왕이면 대학의 학사일정을 존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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