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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28 18:56 수정 : 2015.12.28 18:56

단원고 416교실이 철거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에 안산을 찾았다. 건물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일 때 나는 내 몸이 잔뜩 긴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이 좋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며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오르자 2학년 10반 교실이 나타났다. 노란 꽃다발과 자잘한 소품이 놓인 책상들이 단정하게 줄지어 있었다. 천근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꽃다발 사이사이에서 싱그럽게 웃는 소녀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작년 5월 이들의 영정을 껴안고 청운동 길바닥에 앉아 있던 부모들의 텅 빈 눈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우욱’ 하고 울음이 게워져 나왔다. 나는 순식간에 2014년 4월15일 이 교실을 왁자지껄하게 채웠던 스무명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날 오후 마지막 아이가 이곳을 빠져나간 후 교실은 그대로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간절한 기도가 깨지고 참혹한 시간이 흘러 소녀들은 하나둘씩 영정으로 돌아왔고, 그 뒤로 창자가 끊어질 듯한 부모들의 통곡 소리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들의 흐느낌이 번갈아 이곳을 채웠다. 그리고 울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교실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을 거슬러 흐르기 시작했다. 진실을 밝히려는 부모들의 그칠 줄 모르는 싸움과 416을 잊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기억투쟁이 교실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시간이 멈춘 교실 위로 그리움과 결연함, 희망과 저항의 지층들이 켜켜이 쌓였고 다시 그 위로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았다. 참사 600일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은 이곳이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교육청은 다가올 1월 명예졸업식을 끝으로 교실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고 교실은 재학생을 위한 것이며 죽은 이들의 흔적을 그대로 두는 것은 재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추모를 포함해야 하고 재학생을 위해서라도 교실은 반드시 보존해야 하며, 희생자들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린 교실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진행되는 입시교육이란 더욱 가혹한 것이라고. ‘416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육과 추모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학교는 말하지만 유가족은 알고 있다. ‘당신들은 구조를 모른다’고 팽목항에서 유가족을 가로막던 이들이, ‘당신들은 법을 모른다’며 국회에서 유가족을 모욕했던 이들이, 이제 학교 앞으로 몰려왔을 뿐이라는 걸. 아무도 죽이지 않았는데 모두가 죽은 것처럼 누구도 지우지 않았는데 도처에서 세월호는 사라지고 있다.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2학년 6반 교실의 시계가 8시45분에 멈춰 있다. 누군가 8시50분에 맞춰둔 것을, 뒤에 온 어떤 이가 조금 더 당겨놓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직은 모두가 따뜻하게 살아 있었던 때. ‘가만히 있으라’는 죽음의 주술이 울려 퍼지기 전. 그리하여 무언가를 바꿀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시간. 8시45분 단원고 교실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8시50분 이후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저 무능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304명의 목숨을 수장시킨 후에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기록을 삭제하는 일이었다는 걸. 그리하여 1년 후 우리는 보게 되었다. 그들이 마침내 제 자신의 기억마저 바꾸어버리는 것을. 그러니 아직도 세월호에 남아 시시각각 사라지고 있는 이 교실의 주인 남현철, 박영인의 자리에 앉아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 교실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세상 읽기’의 새 필진으로 참여한 홍은전 작가는 노들장애인야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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