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03 18:43
수정 : 2016.01.03 18:43
“그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정치 밖에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는 러시아의 혁명가였던 부하린이 한 말이다. 한때 극좌파 그룹의 지도자로서 레닌의 후계자로 회자되며 29살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이 된 청년 혁명가였던 부하린은 그러나 1938년 모스크바 재판에서 사회주의 정부 전복 기도와 시장에 의한 경쟁을 지지하는 우익 기회주의자라는 이름 아래 스탈린에 의해 처형당한다.
모든 정치적 재판이 그렇듯이 모스크바 재판 역시 완강한 폭력의 실체를 숨기고 있다. 이 재판에서 검사 비신스키는 객관의 세계를 견지하면서 가능한 한 모든 비결정의 영역을 지우려고 한다. 부하린 노선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는 객관화된 역사 안에 자신들의 폭력을 숨기면서 재판을 통해 이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명의 가장 심각한 위협은 한 사람의 사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기준으로 설정된 혁명적 정의를 보통의 법전 아래 숨기고 죽이는 일일 것이다.
부하린은 최후진술에서 헤겔의 불행한 의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자적 의식으로부터 순수사유의 금욕주의와 개별 자아의 회의주의 단계를 거쳐 도달하게 되는, 대자적 의식의 마지막 단계이며 동시에 분열되어 있는 상태를 인식하여 통합된 불변적 본질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고자 하는 불행한 의식에 대해 부하린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주관과 객관의 불일치라는 역사의 비극적 본질에 대해, 또한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사람이 져야 하는 역사적 책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역사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그가 역사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게 하고 갑자기 가면을 벗어서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 속의 행위자들은 자신이 의도하고 예측했던 주관적 판단과 현실의 객관적 결과들 사이에서 일그러지고 찢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갖게 될 객관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행동에 착수해야 하는 비극적 존재다. 부하린은 1938년 모스크바 재판의 판단이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이 임박한 시기에 필요한 정치적 결정이며 패배의 대가로 받아들이는 자신의 죽음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독단적 견해일 뿐임을 그의 최후진술에서 “세계사는 세계라는 판단의 법정”이라는 말로써 대신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그랬듯이 부하린은 침묵하기 전에 매우 짧게 “운명은 곧 정치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운명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이미 써진 실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나의 의지와 선택이 사건의 다양성과 모호함에 부딪쳐 분열할 때 생겨난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가능성에 기댄 행동을 실제로, 미래를 현실로 간주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더 정확하게는 부하린의 삶이 비극인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정치세계의 현실 자체가 비극의 본질일 것이다. 현대의 정치가 현대의 비극이 되는 이유는 이로부터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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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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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시대의 정치는 다양하게 분화하는 시민들의 이해를 따라 타협과 양보의 지루한 일상이 될 확률이 높고 한 명의 위대한 정치인이나 한 번의 중대한 선거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정치의 본질은 역사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창당과 수성에 나서는 정치인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분열을 지양하는 데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여전히 우리의 삶과 세계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는 정치이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의 선택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면서 정치를 희극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피해 줄 것을 당부한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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