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31 18:28
수정 : 2016.01.31 18:28
불확실한 시대의 앞날을 읽어내는 방법으로 빅데이터가 유행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선택과 움직임의 자료를 모아 대중의 행동패턴을 예측하고 이를 사회의 여러 분야에 응용하고 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은 자신이 하는 작업을 인터넷 시대의 포춘텔러(fortune teller)라고 부른다. 달리 표현하자면 후기 근대사회의 무당쯤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무당을 찾는다. 다만 과학적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최근에는 정치에서도 여론조사나 통계가 절대적 기준처럼 자리 잡았다. 경제에서 빅데이터를 통해 소비 수요를 예측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치라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정당이나 후보자의 지지율이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고 믿는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며 변덕스러운 대중의 마음을 쫓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정치인들은 빅데이터에 의존해서라도 예측할 수 있어야만 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정치세계의 비극적 속성을 이겨내고자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과 인물을 통해 공동체의 비전을 구현해야 하는 정당과 빅데이터를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는 선거기획사의 구분이 모호해 진다.
그러나 만약 시민들의 변화하는 선호를 독립변수로 놓고 한국정치의 향방을 종속변수로 구하고자 한다면 우리 정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무형의 어떤 집단을 실재하는 것처럼 상정하고 그들의 이해를 사후적으로 추수하는 선에서 그친다. 이런 접근은 우리 사회의 기존 세력 구조를 정당화하거나 뒷받침하는 미시적이고 사소한 이론들을 만들어 낼 뿐 구조나 흐름 자체를 바꾸려는 거대담론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정치공동체의 앞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서 평가받는 형성의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그 무게를 감당해 내야 한다. 정치는 시민들의 파편화된 이해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공동선을 제시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다.
통계의 숫자 뒤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세계가 있다. 몇 가지 기준으로 구분되어 묶인 숫자는 그 숫자를 생성시킨 구조와 행위자의 변화가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고 다시 그런 변화가 바람직한가를 규범적으로 따져 볼 수 있다. 정당은 결과로서의 숫자를 쫓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숫자를 만들어낸 원인과 그 원인의 정당성을 추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에서 빅데이터 작업은 첫째, 현장조사를 통해 얻어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하고, 둘째, 그 이야기들의 차이를 통계적 방법을 통해 비교하고, 셋째, 그렇게 드러난 차이의 의미를 서로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이론적 모델링과 결부시켜 검증했을 때 더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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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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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목표로 하는 모든 개혁은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첫째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둘째는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셋째는 이렇게 바뀐 사람이 제시한 새로운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세력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 세 단계가 모두 이뤄졌을 때 우리는 개혁이 제도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세력관계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정책은 쉽게 후퇴하고 정책에 의해 구체화되지 않을 때 사람을 바꾸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총선을 앞둔 각 정당의 인재 영입은 새로운 정책 제안과 세력관계의 변화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기약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그러나 모든 개혁은 사람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를 참고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의 의지를 대체할 수는 없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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