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03 19:47
수정 : 2016.02.03 19:55
메르스가 끝이 아니라는 예측이 맞았다. 일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브라질에서 날아온 낯선 이름, ‘지카’가 말썽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니 남의 일이라 할 수 없게 됐다.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다행이지만, 이번에도 처음이 중요하다. 특히 안내자, 조정자, 보호자 역할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정부가 길을 잘 잡아야 한다. 먼저, 익숙한 과거인 메르스 사태가 가르치는 원칙 한 가지부터 확인하자. 감염병은 단지 의학과 보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는 점. 이제 말할 다른 교훈도 여기서 출발한다.
첫째, 대화할 것. 메르스 때 곤욕을 치렀으니, 알리고 공개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일방통행으로는 부족하다. 홍보와 교육도 필요하지만, 궁금증에 답하고 요구를 듣는 것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전문가의 ‘사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대화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정부 방침을 믿을 수 있게. 정부가 강제로 시키거나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최고 수준의 신뢰가 필요하다. 메르스 때 마을을 막고 병원 문을 닫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이런 강제에 불신만 가득하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이 이익을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조건은 야박하다. 전시행정이 아니라 대안이 없는 최후 방법이라는 데 동의하고, 내 손해는 너무 크지 않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정교한 계산은 불가능하니 믿음이 더 중요하다. 정부가 내린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큰 손해를 봤다면 어느 정도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믿음.
셋째, ‘최고위’ 리더가 처음부터 제구실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감염병 대책은 의학과 보건에다 사회적인 것이 결합한, 말 그대로 종합과 융합을 요구한다. 학교와 직장, 지자체가 움직여야 하고,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될 수 있다. 때로 보건당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는다.
형식만 갖춘 범부처 대책회의나 국무조정 같은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하지 말라. 메르스 사태 때 충분히 경험한 대로다. 실제 이 일의 리더(들)는 누구인지, 그 실력과 헌신을 믿을 수 있는지, 금방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것이 시민이고 국민이다.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불편한 지침을 받아들이게 할 방법이 좋은 리더십(체계) 말고 또 있을까.
노파심에서 한 가지 교훈을 보탠다. 불평등에 예민할 것. 정보와 지침은 넘치지만, 의도하지 않은 격차가 생기고 커질까 걱정스럽다. ‘지카’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곳곳에 몰려 있을 것이 뻔하다.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실천할 수 없는 조건, 곧 취약성의 불평등을 기억해야 한다.
조건이 나쁜 쪽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 딜레마다. 나쁜 조건 속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 모르는 불평등의 역설이라고 할까. 유입과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방역당국은 불평등에 더 예민해져야 한다. 어떻게 그들에 이르고 영향을 미칠 것인가, 책임 당국의 믿을 만한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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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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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은 값지지만, 이것만으로 다 대응할 수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지카를 담당할 만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들끓는다. 그럼 지카가 끝나면 또 맞춤형 ‘땜질’을 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다른 감염병이 닥치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답은 분명하다. 어떤 바이러스가 닥쳐도 통할 수 있는 시스템과 실력, 즉 ‘기초체력’을 갖추어야 한다. 메르스, 그리고 지카 유행에서 배워야 할 으뜸 교훈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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