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15 20:17
수정 : 2016.02.15 21:56
우리나라에서 친환경농업과 관련된 정책의 뼈대는 약칭 ‘친환경농업육성법’과 그 하위 법령들에 집약되어 있다. 1997년에 제정된 이 법에서는 친환경농산물에 관한 인증 대상을 저농약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유기농산물로 나눠서 규정하고 있다. 저농약은 화학농약과 비료를 권장 사용 기준량의 절반 이하로 써서 지은 것, 무농약은 화학농약은 쓰지 않고 화학비료를 권장 기준량의 절반 이하로 줄여서 지은 것, 유기는 두 가지를 전혀 쓰지 않고 지은 것에 대해 인증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다 지난해에 저농약농산물을 인증 대상에서 제외하고 인증의 유효기간도 2년에서 1년으로 줄여 요건과 관리를 강화했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친환경농업이 정착하고 발전하는 데 이바지한 바 크지만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인증을 취득하는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2년간의 농사 과정을 기록해둬야 할 뿐 아니라, 서류 작성이 복잡해서 저학력 또는 고령의 농부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인증을 받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한 건에 50만원 가까이 돼서 부담스럽다. 인증을 받으면 지자체 등이 그 비용의 대부분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실패한 때에는 소요된 비용을 농가가 부담해야 한다.
또 인증 제도는 대농 또는 집단화된 농사에 유리하다. 이웃한 관행 농지에서 살포한 농약이 날아들거나 이를 포함한 농업용수가 유입되지 않도록 하고 있어, 농지가 소규모로 분산되어 있는 우리 농업의 현실에서는 소농이 인증을 취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오랫동안 나름대로 깨끗한 농사를 지어오다 인증을 신청했으나 위의 이유로 인증을 받지 못한 농가가 친환경 농사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
올해부터 저농약 인증이 제외된 것은 과수 재배 농가에는 치명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날씨는 여름철이 덥고 습도가 높아 작물의 병해충을 억제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이는 생산 과정이 봄부터 가을에 걸쳐 있는 과수 재배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해서 무농약으로 과일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기후가 서늘하고 습도가 낮은 서유럽이나 남미 등 이른바 지중해성 기후 지역의 과수 재배 조건과 대비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농가들이 끊임없는 연구와 실천으로 농약 사용을 줄이고 저농약 인증을 받음으로써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소비자들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과일을 소비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저농약 인증을 제외한 것은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온 과수 재배 농가의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정부가 이 제도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기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제도와 관련해서 설치된 농산물품질관리원이라는 정부기관은 관련 업무가 방대해서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민간기관을 선정해 품질인증 기능을 위탁하고 있다. 그런데 선정된 민간기관들은 수익성 위주로 서로 경쟁하는 실정이어서 실질적인 품질관리보다는 인증에 필요한 형식 요건을 갖추는 데 급급하다. 오늘날 품질인증을 받은 농산물의 실질적인 안전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불신이 싹튼 원인이 대체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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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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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친환경농업 정책의 기본 방향은 요건을 덜 갖춘 자를 가려서 배제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의지를 가진 농가의 의욕을 부추기고 권장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더불어 국가가 농사꾼 개인의 경제활동에 관한 모든 자료를 관리하는 상황을 마땅치 않게 여겨 인증 자체를 거부하려는 농부도 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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