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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13 21:29 수정 : 2016.03.13 21:34

미국정치학회장을 지낸 민주주의 비교연구의 권위자 아렌트 레이프하르트는 1996년 회장 취임 연설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하였다. 미국 사회의 낮은 투표율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룩셈부르크 등 20여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의무투표제를 미국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 지방선거의 경우 겨우 30%를 웃도는 투표율도 문제지만 그나마 투표 참가자들을 분석해보면 사회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 많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가 정치과정에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는 미국의 상황이 중대한 대표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았다.

정치 참여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대표의 권리를 구조적으로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결코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예컨대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젊은 세대나 이주노동자들은 정치과정에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신을 대표하지 않거나 또는 대표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제한에 의해 대표되지 못한다. 이들 역시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정치공동체를 위해 소비세나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를 납부할 것이다. 분명히 공동체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정치과정에 반영되지 않는 사각지대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사회구성원의 목소리가 빠짐없이 대표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보자면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적 권리는 다른 권리와 비교할 때 민주주의를 완전하게 만드는 불가결한 요소다. 예컨대 사회적 소수나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회복지와 경제적 이익은 민주주의 없이도 가능하다. 독재 아래서도 상당 기간 지속적으로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데 성공한 나라들이 있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사회적 권리와 함께 소극적 의미의 자유까지도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 나라들을 우리가 이상적인 정치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경제적 이익의 지속적인 제공을 대가로 정치적 권리를 포기한 사회적 소수가 존재하는 그런 정치공동체를 민주적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정치적 권리 없이 주어진 경제적 이익이나 사회적 권리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철회될 수 있다. 특히 경제적 쇠퇴기에 득세하기 시작하는 극우파들은 가장 먼저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하거나 정치 참여를 포기한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의 운명에 무관심한 상태에서 고립된 공간 속에 허용된 개인의 자유는 쉽게 반전되고 상처를 입는다. 정치적 권리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계층의 운명에 대한 자결권을 의미하고 소수집단이 대표된다는 의미에서 그런 정치공동체는 민주적이다.

정치적 권리의 행사를 독려하는 의무투표제는 몇 가지 장점을 갖는다. 첫째, 높은 투표율을 통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른 투표 참여의 편중 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 셋째, 젊은 세대나 특정 계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을 줄여 선거에서 돈의 역할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 제도는 정당한 사유 없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고 제시된 후보나 대안 가운데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추가하며 보통 70살 이상은 의무투표를 면제한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 참여는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참여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의무투표제는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시민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현실은 민주주의 후퇴를 막는 장치로서 젊은 세대나 사회적 약자의 참여를 높이는 의무투표제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변하고 있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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