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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14 19:23 수정 : 2016.03.14 20:07

올해 대학 졸업반인 두 아이가 방학 중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큰아이는 기숙사를 운영하는 회사가 학생들 중에서 선발해서 경비 일부를 지원해준 덕에 중국 상하이와 홍콩을, 작은아이는 제가 실습한 기간에 모아둔 돈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큰아이는 여행에 대해 특별한 감흥이 없었던 듯한데, 작은아이는 10여일 산길을 걸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했던지 틈나는 대로 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녀석들은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외국을 벌써 서너번씩 다녀왔다.

요즘은 젊은 농부들에게도 해외여행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경비가 많이 들어가는 유럽이나 미주 쪽은 몰라도 가까운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정도는 소위 선진지 견학이나 연수라는 명목으로 또는 관광차 쉽게들 다녀온다. 그래서 요즘에는 여행이라면 으레 해외여행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바야흐로 해외여행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 올까. 여행이란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았던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만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장엄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앞에서는 제 삶이 각박했음을, 역사적인 유물이나 유적 앞에서는 현대 문명에 대한 성찰을 경험할 수 있을 때에야 여행은 비로소 의미있는 일이 될 듯하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기이하거나 장대하거나 아름다운 이국 풍경을 떠올리며 참 좋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에 대해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오늘날 여행은 전형적인 소비재가 되어 간다. 앞서가는 사람은 대중과의 차별화를 위해 더욱 새로운 곳으로 가고, 대중은 나중에 그들을 뒤따른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함께 이와 관련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지리산 인근에는 참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도회에서 높은 학력과 나름의 전문성을 가졌던 사람들이 산골로 내려와 사는데, 각자의 재능을 발휘해 몇 달간 일해서 모은 돈으로 남은 시간에 해외를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불가피한 이유로 자녀가 없으며 주거에도 별로 구애받지 않고 살아간다고 한다.

자녀들이 다 성장하고 은퇴를 눈앞에 둔 지인은 그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선망하는 듯했지만 나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 내게는 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였을까. 그분과의 대화가 끝난 뒤 그 문제는 나에게 무거운 물음으로 남게 되었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사람은 태아 때에 탯줄을 통해 모체와 연결되어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음으로써 성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태어나는 순간에 탯줄을 끊고 독립적인 개체가 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생존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자급하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뿐 아니라 두 발로 땅을 딛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은 태어나면서 끊어버렸던 생물학적인 탯줄과는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탯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자식이든, 고토(故土)와 같은 대지이든, 어떤 대의(大義)가 되었든 각자의 삶을 단단하게 묶어둘 수 있는 기반과 탯줄이 필요할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참된 자유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홀가분한 상태라기보다는 어떤 ‘얽매임’을 받아들이고 그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이제는 인구학적으로 극히 예외적인 존재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농부가 갖고 있는 매우 예외적이고 특이한 세계관이 돼버린 듯하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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