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11 19:26
수정 : 2016.04.11 19:26
최근 우리 지역에 도로 하나가 새로 개통되었다. 호남고속도로 송광사 나들목에서 고흥까지 가는 국도가 4차로로 새롭게 건설되었다. 이 도로는 내 어릴 적에는 차가 다닐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길가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던 신작로였다. 중학교 다닐 무렵 이 도로는 산뜻한 아스팔트로 포장된 2차로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40년 만에 고속도로 못지않게 반듯한 도로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10여년 동안 계속된 공사를 바라보면서 도로가 빨리 개통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다.
새 도로는 지역의 모습을 크게 바꿔놓았다. 벌교로 넘어가는 고갯길에는 터널 두 개가 뚫려 대낮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고, 면사무소 앞 들판에는 커다란 콘크리트 교각이 줄지어 선 고가도로가 생겼다. 그 구조물의 높이와 크기는 시선을 압도하듯 하늘을 가리고 있어 고즈넉한 시골 풍경과는 끝내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다. 그 덕분에 기존의 도로 가에 서 있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많이 잘려나갔다. 반듯한 길 양쪽으로 심어진 아름드리나무들은 터널을 이뤄 가을에 붉은 단풍이 들면 차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고 가는 여행객이 많았다. 주변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에게는 이 나무들이 햇빛도 가리고 가을에는 작물에 낙엽을 쏟아붓고 뿌리가 논밭을 파고들어 눈엣가시이긴 했지만, 지역을 상징하던 그 명물은 누더기처럼 변해버렸다.
새 도로는 들판의 모습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 동네에서 벌교로 나가는 길에는 곱들이라는 꽤 넓은 평야가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들판을 가로질러 일직선으로 나 있는 도로는 시오리 길은 좋이 되어 어릴 적에 걸었던 그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 까마득했다. 그 길을 대신한 새 도로는 6미터나 되는 높이로 둑을 쌓아 만들어져서 들판을 완벽하게 갈라놓았다. 빙 둘러 산기슭에 자리잡은 마을에서는 건너편 기슭의 앞마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또 어떤 곳은 마을 바로 뒤쪽으로 도로가 나서 콘크리트 옹벽이 마을의 지붕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고, 고가도로가 지나는 곳에서는 농가의 마당이나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새로 나는 길들은 오직 자동차의 신속한 통행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감 또는 연관성은 점차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전혀 별개의 존재가 된다. 동네 앞에 있는 기사식당은 점심을 먹으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한동안 재미를 봤지만 몇 년 전 순천에서 전주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장사가 시들해졌고, 이번에 도로가 새로 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식당 주인은 새 도로가 개통된 직후 식당 앞을 지나는 차들이 한 시간에 세 대뿐이라고 푸념을 했다. 가까이 있는 주유소도 도로 건설 사업이 완전히 끝나면 기름을 팔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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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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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도로가 새로 나면 지역이 더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돈이 더 돌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지자체마다 커다란 행사를 기획하는 데 열을 올리고 그것을 빌미로 교통망을 확충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지자체장을 포함해 정치인들은 그것을 자신의 중요한 업적으로 내세우고는 한다. 그러나 돈은 중력의 법칙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즉 돈은 희박한 곳에서 몰려 있는 곳으로 흐르려는 본성이 있는 것 같다. 교통이 좋아지니 사람들이 서울로 쇼핑을 하러 다니고, 대기업들은 앞다퉈 지방에 커다란 매장을 열고 돈을 서울로 쓸어간다. 도로는 지방으로 돈이 풀리는 통로가 아니라 돈과 사람을 서울로 빨아들이는 빨대다. 철도나 항공 교통 또한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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