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4.27 20:05 수정 : 2016.04.27 21:58

제1당이 될 정당의 경제 브레인이라는 사람이 의료 영리화를 찬성하고 나섰다. 무슨 영리화를 어디까지 주장하는지 모르지만,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에 의료를 포함하자고 한 것은 틀림없다. 사석이 아니니 괜한 소리는 아닐 터, 서비스법이 의료 영리화의 한 가지 ‘버전’인 것도 알았을 것이다.

개인 의견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종인 대표가 직접 부른 사람인데다, 현직이 당의 ‘국민경제상황실장’이다. 지도부와의 관계, 당 내부 위상, 앞으로 할 역할, 어느 모로 보나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하는 발언이라고 판단한다.

한 가지 더, ‘규제프리존특별법’이라는 법도 의료 영리화에 속도를 더할 참이다. 해당 지역을 규제 ‘해방구’로 만드는, 말하자면 서비스법의 지방용 확대판이라고 할까. 이런 법이 안전과 건강보호, 공공성에 관심을 둘 리 만무하다. 의료법인이 지은 의료호텔, 정체불명의 첨단 장비 시험, 미용실 안의 의료기기,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서비스법의 길을 닦는 첨병인데다 더 급진적인 것도 있으니, 잠재적 위험과 위협이 크다. 명시한 규제를 빼고는 모두 허용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 갈 데까지 간 규제완화의 완결판이라는 점이 그렇다. 이래도 무사통과, 여야 원내 지도부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합의해서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두 법은 리트머스 시험지일 뿐이다. 정부 여당이야 그렇다 치고, 두 야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 국회 내내 서비스법에서 의료를 빼라고 한 것은 지워야 할 과거사인가. 설마, 의료 영리화를 지지해야 ‘우클릭’에 ‘중도’인가. 막 지난, 그래서 한창 해석 중인 총선의 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물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표를 달라고 한 기억이 생생한데, 첫 작품이 의료 영리화라면 그 속내가 당황스럽다.

작년 12월10일 <한겨레> 지면에 의료산업을 반대한다고 썼으니,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만 묻는다. 모든 정당, 특히 두 야당이 앞세운 경제민주화의 핵심, 그중에서도 민생과 양극화, 불평등의 의미다. 의료 영리화는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민생이 살고 양극화와 불평등이 줄어드는가?

내가 생각하는 셈법은 간단하다. 의료 영리화는 ‘장삼이사’ 대부분 서민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 영리화가 진전할수록 삶이 피폐해지고 양극화와 불평등은 더 심해진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되는 것이면 민생이 아니라 민폐다. 백 걸음을 양보해 작은 경제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5퍼센트 이하의 소수가 과실을 독점할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 이 설명 또한 복잡하지 않다. 민생이라 할 때 그 ‘민’(民)에게 돈벌이 영리 의료는 비용이고 지출이며 부담이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지금 구조조정이라는 폭탄을 맞은 조선과 해운산업, 그중에서도 정리해고 대상자를 생각해보시라. 노심초사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을 떠올려도 마찬가지다. 기를 쓰고 돈을 더 많이 벌겠다는 의료란, 이들 ‘민’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제1당이 물꼬를 텄고 어느 당도 브레이크 노릇을 하지 않을 모양이다. 의회 권력이 바뀐다는데 의료 영리화는 오히려 날개를 다는 이 기묘한 역설적 상황. 그러고 보니 의료만 그럴까 싶다. 그나마 상품과 영리의 ‘비윤리’ 감각이 남아 있는 의료가 이렇다면, 골목상권과 중소기업, 정리해고와 노동개혁은 어떻게 될까.

아프게 묻는다. 경제민주화가 이런 것인가? 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