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2 19:12
수정 : 2016.05.02 19:12
“행복한 인간은 친구를 필요로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이때 친구란 또 다른 자기이자, 말과 생각을 서로 나누는 존재이다. 내가 베푼 관심과 우정에 호응하고,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타인이 친구가 된다. 우리는 친구가 된 타인과의 밀도 깊은 관계를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친구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변모시키고, 좋은 삶의 목적을 완성시켜주는 인생의 동반자이다.
하지만 친구가 되리라고 믿었던 타인이 나를 닮은 ‘형제’가 아니라 나를 억압하는 위협일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는 언제부턴가 행복을 ‘만남의 광장’보다는 ‘자신만의 방’에서 찾고 있다. 선비의 안빈낙도를 노래하는 동양의 시가나, 도시로부터 탈출해 고독에서 피난처를 찾는 서양의 미술이 많은 공감을 얻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타인과의 관계를 가능한 한 줄이며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흐름이 뿌리를 내린 데는 시장경제의 역할이 컸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시장경제의 이상을 멋지게 보여준 바 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 때문이다.” 그가 제안하는 시장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신분·재산·성별·학력 등 어떠한 자의적 기준과도 무관하게 익명으로 만나 품질과 가격 그리고 지불 능력만을 고려하면서 능력에 따라 필요한 것을 얻어가는 공간이다. 계약에 의존하는 시장에서는 친구를 얻거나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안전하게 얻기 위해 만남이 이뤄진다. 각자의 행복은 자신들의 공간으로 돌아가 시장에서 얻은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시장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는 타인들과의 대면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이다. 이러한 시장에 힘입어 사람들은 윤리적 의무로부터 해방된 가운데 경제활동에 매진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달성하지 못했던 높은 수준의 물질적 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시장에서 우리는 각자가 소유한 것을 교환하지만 우리 자신을 함께 나누지는 않는다. 타인과의 적극적 만남에서 얻게 될 고양된 인간관계의 가능성도 원천봉쇄된다. 그리고 ‘기쁨 없는 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서로에게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적인 감정은 없소. 단지 비즈니스일 뿐이오.” 킬러가 주인공인 경우 이런 대사는 그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장치일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 사적인 일이 있을까. 애덤 스미스의 시장은 내 행동이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이 킬러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장은 필요하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고 평등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시장이 강요했던 ‘경제와 인생’, ‘경제와 사회’의 이분법을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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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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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에 따르면, 시장은 개인적 필요를 채우는 장소이지만,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마당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로컬푸드나 윤리적 소비 활동과 같은 움직임들에 특히 주목해보고 싶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삶에 다가가 말과 생각을 나누고 도움을 주는 인격적 관계가 시장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소유물의 교환에 더해 서로 ‘친구’가 됨으로써 시민의 덕성을 실현하는 ‘시민적 시장’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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