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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9 19:14 수정 : 2016.05.09 19:14


최근 우리 지역에서 거대한 토목공사가 새로 진행되고 있다. 전남 동부 지역의 식수원인 주암호 상류 하천에서 ‘하천재해예방사업’이라는 공사를 하고 있다. 주암호 끝에서 상류 쪽으로 7킬로미터 정도 되는 구간의 하천 폭을 기존의 30미터에서 70미터로 넓히고 양쪽으로 높다란 둑을 쌓은 다음 차가 통행할 수도 있는 둑길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366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이 사업은 도에서 발주하고 지역의 도의원이 사업을 따왔다고 한다.

공사 현장에서는 커다란 굴착기가 하천 바닥의 바위와 토사를 걷어내고, 덤프트럭들은 흙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불도저는 하천 양쪽의 농경지 위에서 흙을 밀어붙여 둑을 쌓고 길을 내고 있다. 붉은 흙탕물이 끊임없이 흘러 식수원이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당장은 하류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에게 즉각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작은 흙 알갱이들이 물고기의 아가미에 달라붙으면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하지만 공사 구간에서 홍수 때 침수나 유실의 위험이 있는 농경지는 한두 군데뿐이고 가뭄에 대비해 물을 가두는 일도 아닌데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하는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사업을 따온 지역 정치인은 자못 의기양양해 있는 모양이다. ‘내가 지역에 돈을 끌어왔다!’

그 시냇물은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휴대용 발전기를 돌려 물고기를 잡고, 여름에는 물장구를 치다가 돌멩이 밑을 손으로 더듬어 물고기를 잡아내거나, 냇가 풀섶이나 바위틈에 주낙을 놓아 장어나 메기를 잡기도 했다. 하천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논둑길을 혼자서 걷는 것도 참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라가 올라와 햇볕을 즐기던 바윗돌, 백로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무심한 듯 꿈쩍 않고 서 있던 돌멩이, 물 위에 제 그림자를 비추던 작은 나무들, 물고기들의 쉼터가 되었던 풀섶들 모두 강둑을 덮은 허연 콘크리트 블록에 묻혀버렸고, 그에 얽힌 모든 이야기들도 말끔하게 지워지고 있다. 4대강 사업과 똑같은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 공사 구간이 끝나는 바로 위쪽에는 구석기인들이 살았다는 선사 유적지가 있다. 냇물이 반달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10여년 전에 옛사람들의 집터와 석기 제작터, 석기 등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냇물은 천연의 보호막일 뿐 아니라 식량의 공급원이 되었을 것이다. 선사 유물들은 공교롭게도 재해예방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구간 전체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토목공사는 선사시대의 흔적마저 지우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최근 이 지역을 ‘역사공원’으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이른바 관광자원이다. 시는 45억원을 들여 주변에 있는 농경지 7만여 제곱미터를 사들여서 이곳에 전시관과 생활 시설 모형을 짓고 역사 체험장으로 꾸밀 계획에 부풀어 있다. 학자들은 이 유적의 고고학적·역사학적 의미를 소리 높여 외치고, 개발 용역을 맡은 사람들은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주암호를 건설하면서 수몰된 지역에서 나온 고인돌들을 모아 만들어놓은 인근의 고인돌공원은 지금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폐허가 돼가고 있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개발이 예정된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사람들은 심경이 복잡하다. 시세보다 꽤 높은 보상비에 설레기도 하지만 도로와 하천 공사로 농경지가 갈수록 줄어드는데다 급등하는 땅값 때문에 대체 농지를 구입하지 못해 걱정이다. 이러한 대규모 사업들의 문제점은 수없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식량자급률이 25%도 채 되지 않는 나라에서 농지를 이렇게 가볍게 생각해도 괜찮은 것인가.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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