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5.10 19:29 수정 : 2016.05.10 19:29


안산 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이 공개됐다. 반면에 정운호씨와 관련한 법조 비리 사건의 관련자들은 여전히 익명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 두 사건의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언론의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흉악범’의 얼굴 공개와 관련해 경찰과 언론은 알권리를 내세운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생겼습니다”라는 선정적 제목으로 피의자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정당한 알권리의 대상이 아니다. 얼굴 공개가 ‘패가망신’의 경종을 울리자는 것이라면, 이는 또 하나의 연좌제다. 피의자 가족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것이다.

‘알권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검사장 출신 H변호사”와 관련된 의혹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은 “검사장 출신의 H변호사”가 1심을 담당하고, “부장판사 출신의 최모 변호사”가 2심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전방위 로비를 한 것이 아닌지, 검찰 내부에서도 이에 개입한 것이 아닌지에 관한 의혹이 핵심이다.

사건의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검사장 출신의 H변호사”에 주목해야 한다. 사건은 검사장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섰던 변호사가 과거의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부정한 로비를 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H변호사”는 익명보도 원칙의 예외로 인정되는 ‘공적 인물’이고, 사법절차의 공정성이라는 중대한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이다. 게다가 검찰의 칼날이 검찰 내부의 문제를 겨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검찰이 자의적으로 수사 대상을 축소하지 않도록 이를 견제해야 한다. 검찰에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주문하는 것은 공허한 말에 그치기 쉽다. 언론은 취재를 통해 의혹과 관련한 사실을 알릴 권한과 의무가 있다.

그런데 어떤가? “H변호사”가 어느 검찰청의 검사장이었는지, 정운호 대표가 ‘마카오 원정도박’ 의혹과 관련해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변론을 했는지,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은 수사담당자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에 관하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H변호사”가 어느 검찰청의 검사장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특정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언론은 익명 보도라는 스스로의 제한에 갇혀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연쇄살인범 강○○의 얼굴 공개 관련 토론회에서 한 기자는 “인권 보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를 수용하는 것은 과거 선배 언론인들이 쟁취해온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목 조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인권을 말하지 않는 언론의 자유? 권력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는 철저히 외면했던 그 언론이 아니었던가? 언론은 권력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시민을 위해서 권력 행사의 정당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비판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정정훈 변호사
실명 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은 언론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판단의 일차적 기준은 권력관계를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권 보호와 권력 감시의 함수관계가 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검사장 출신 H변호사”와 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 언론은 어떤 원칙과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언론이 분노의 표적이 된 무력한 개인의 모자를 벗긴 경찰에 편승해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있던 ‘거물’에 대한 감시는 외면한다면, 이는 강자에게는 비굴하면서 약자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정정훈 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