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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1 21:32 수정 : 2016.05.11 21:32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분단국 한국에서 유달리 많이 듣는 격언이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에서 이 말은 알파요 오메가다.

이것은 서기 4~5세기경 고대 로마제국의 베게티우스가 그의 저작에서 한 말이다. 그는 평시에도 군대를 상비하며 아낌없이 군대에 투자하고 전쟁 준비를 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한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며 호기를 부리던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로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준비해야 했던 전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중해를 둘러싼 전 지역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동방의 비잔틴제국으로 찌그러진 것은 역사의 경고였다.

역사의 경고를 잊은 채 베게티우스에게 유혹되어 전쟁 준비를 한 자들은 줄곧 전쟁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16세기 네덜란드가 독립된 국가가 되기 이전 합스부르크 왕조에 저항했던 빌럼 1세는 베게티우스를 탐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는 지긋지긋한 80년 전쟁이었다.

18세기 말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도 베게티우스의 덫에 걸렸다. 그는 프로이센의 평화를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양성하여 프로이센의 영토를 확장하고 훗날 독일연방의 발판을 구축했다. 하지만 불시의 선제공격으로 주변국들을 공포에 빠뜨렸던 그의 정책은 더 큰 전쟁으로 귀결됐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의 머리를 지배한 것은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환상이었다. 그 비극적 결말로도 깨어지지 않은 환상은 히틀러가 프리드리히 2세의 재림으로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란 비싼 비용을 치르고서야 독일인들은 역사의 경고를 받아들였다.

20세기 세계대전의 참화를 목격한 아인슈타인은 베게티우스 명제의 위험성을 간파했다.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개발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했지만, 핵무기를 사용한 것은 미국이었다. ‘평화를 위해’ 미국과 소련은 파멸적 핵군비 경쟁을 벌였다. 그는 간명하게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전쟁을 방지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과 미국은 ‘평화를 위해’ 열심히 전쟁 준비를 했다. 최신 무기 도입에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강력한 국방력 및 “빛이 샐 틈이 없는” 한미동맹을 견고히 유지했다. 최근 들어서는 선제공격적 군사전략을 채택하고 그 이행을 위한 군사훈련까지 진행했다. 그리고 역대 최강이라는 경제제재까지 추가했다.

그 결과는? 북은 4차 핵시험까지 거침없었다. 핵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하나씩 떼어내어 과시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까지 선보였다. 이어서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제국주의의 핵위협과 전횡이 계속되는 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자위적인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미는 핵을 포기하라고 힘으로 압박했지만 그 결과 북의 핵능력은 강해졌다.

이러한 북도 물론 베게티우스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탈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업총화보고에서 국방과학 분야 과업으로 무기의 현대화를 제시하면서도 핵무기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지난 3~4월 내세웠던 선제타격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핵 선제 불사용을 원칙으로 천명했다. 과거의 적대국들도 북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이라면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화와 협상을 남북관계의 “기본방도”라고 내세웠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역사의 경고를 현실에 받아들일 기회의 창이 열린 셈이다. 같은 정책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의 극치 아닌가.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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