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3 19:22
수정 : 2016.05.23 19:22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학생 조태준(가명)은 길을 가다 어린아이를 보면 ‘그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세월호 미수습자인 여섯살 권혁규 어린이. 조태준은 배에서 구조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뉴스에서 오빠 권혁규를 찾고 있는 여동생을 보았다. 그는 그 오빠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으므로 동생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그러나 차마 부칠 수가 없었다. “제가 살인자 같은 거예요.”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펴낸 두 번째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는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차마 전할 수 없어 가슴속에 꾹꾹 눌러두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세월호가 갑자기 기울었던 그 아침, 조태준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객실을 빠져나왔다. 그때 복도에서 울고 있는 꼬마 오누이를 보았고 남자아이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 “형, 우리 죽어요?”라고 묻는 아이를 달래며 약속했다. “아니야, 형아가 너를 살릴게.” 위에서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가 소방호스를 던졌다. 아이를 안고 올라가려던 그를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말렸다. 그는 혼자 올라가 다음 사람들을 끌어당겨 주었다. 뒤이어 줄을 잡고 올라오는 사람들은 모두 어른들이었다. 줄을 놓친 사람들이 물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는 팔뚝의 핏줄이 다 터지도록 죽을힘을 다해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 시각 배는 완전히 뒤집어져 출구조차 빠르게 잠기고 있었다. 물이 목까지 차올랐을 때 조태준은 간신히 꼬마 여동생의 손을 잡았다. 그는 공포에 질린 여동생의 표정과, 저편에서 계속 조태준만 바라보고 있던 그 오빠의 얼굴을 보았다. ‘여기가 지옥일까.’ 그가 여동생을 끌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배는 더 가라앉았고 오빠의 차례가 되었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아무리 뻗어도 손이 닿지 않았다. 순간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살아 돌아간다 해도 그를 기다리는 건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세계. 사는 것도 어차피 지옥이었다. 그는 붙들고 있던 난간을 가만히 놓았다. 그러나 그때 구명조끼가 벗겨질 듯 위태로운 한 여학생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여학생을 안고 올라와 마지막으로 구조되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생존학생들이 무엇을 견디며 살아왔는지가 생생히 담겨 있다. 오누이의 삶과 죽음을 한순간에 갈라놓으며 기울어진 세계에 대한 공포, 아이보다 먼저 올라오는 어른들의 지옥, ‘형, 나 죽어요?’라고 묻는 꼬마 아이의 얼굴. 그것들은 놓쳐버린 누군가의 손이나 뻗어도 뻗어도 닿지 않는 빈손의 감각처럼 그들 몸에 각인되어 있다. 나는 죄책감이란 것이 ‘먼저 달아난 사람’의 감정인 줄로만 여겼는데 그것이 ‘누군가를 구하려다 실패한 사람’의 것일수록 더욱 고통스럽고 지독할 수 있음을 알았다. 실은 죄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한 것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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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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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10대의 마지막 터널을 지나 스무살이 되었다. 위로를 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응원하기 위해선 그들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차마 부치지 못했던 편지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세월호의 가장 중요한 진실들이 담겨 있다. 그들은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생존자들의 죄책감마저 조롱하는 허약하고 비겁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상처받았지만, 그 슬픔의 바다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 또한 결국 누군가가 내민 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언한다. 그들은 고통을 해석하는 힘이 있고 그 슬픔이 자신을 좀더 성숙한 곳으로 데려갈 것임을 알고 있다. 2년 만에 힘겹게 부친 그들의 편지에 많은 사람들이 답장해주길 바란다.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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