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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5 20:32 수정 : 2016.05.25 20:32

미봉책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미’와 ‘봉’은 둘 다 꿰맨다는 뜻이니, 이리저리 덧대어 고치는 것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비슷한 뜻으로 ‘일회용 반창고’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로 겉만 가린다는 뜻이니 매한가지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 갖가지가 미봉책 아니면 일회용 반창고 꼴이다.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솔직히 말해 울화가 치민다. 당장 ‘강남역 살인사건’ 대책만 해도 그렇다. 몇 달간 여성범죄에 대응하는 특별 치안활동을 하고, 정신질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경찰서에 배포한다고 한다. 근본은커녕, 이게 무슨 대책이기는 한 것일까.

막 1년이 지난 메르스 유행도 다르지 않다. 그때는 모두가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노릇을 제대로 하는 정부 조직과 체계, 인력 확보, 일선 보건소의 대응태세…. 개혁이라는 말은 유행이 지났다 치자. 개편, 정비, 업그레이드 따위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부 바깥의 근본은 더 가망이 없다. 응급실 이용과 간병 문화를 포함해 의료체계 전반을 손보자고 했던 것이 얼마 전이다. 쌓인 문제가 모두 시스템에서 왔으니 미봉책으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태산을 울리는 큰 소리가 났지만 겨우 쥐 한 마리가 나타난 꼴이랄까. 결과가 허탈하기로는 정부 안팎을 가릴 수 없으니, 아무래도 발본과는 거리가 멀다.

금방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라서 그렇지, 지금 대부분 대책이 미봉이고 임시변통이다. 구조조정과 경제 살리기에 무슨 근본이나 비전이랄 것이 있는가. 임금피크제나 성과연봉제는 어떤가. 일자리 정책, 저출산과 고령화까지 가면 뭘 생각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 흔하던 장기계획과 비전, 로드맵조차 보기 어렵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상 말고 근본 이유가 있을 터. 한 가지는 (이명박 정권 이후 시대정신이 된) 실용주의 이데올로기 탓이 아닌가 한다. 그 어떤 문제 해결도 현실성의 압박을 벗어날 수 없다면, 실용은 그 자체로는 탓할 수 없는 도구인 동시에 가치다. 실용, 오늘 이 자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도구와 수단으로서의 실용을 넘어 ‘주의’가 된 것.

겉으로는 중립을 내세우지만, 근본과 구조를 숨기는 것이 이데올로기로서의 실용주의다. 사건 뒤에 숨은 부실한 정신보건체계나 성차별 구조는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전망에서 사라지고, 우범자 색출과 순찰 강화가 강력하게 실용을 주장한다. 감염병 관리체계도 마찬가지. 보건의료 시스템은 먼 훗날의 과제로 미뤄지고, 당장 대책은 건강보험 진료비뿐이다. 문제는 봉합되고, (다음에) 다르게 드러나며, (그다음에) 봉합되기를 되풀이한다.

다른 이유 한 가지는 지난 10년 우리 사회의 뚜렷한 경향성인 민주주의 후퇴다.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의 비민주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민주주의는 한층 더 깊은 뿌리에 닿아 있다. 미봉을 넘는 ‘근본 지향성’은 곧 권력의 문제이고, ‘약한’ 민주주의는 근본을 묻는 동력을 체계적으로 훼손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다시 강남역 사건을 생각해보자. 근본을 찾자고 돌진할 때, 정신보건체계든 양성평등 구조든 누구에게 어떤 위협이 되겠는가. 기득권과 그 구조에는 미봉책이 가장 안전하다(!). 그렇다면 현실을 흔드는 ‘불안한’ 근본 질문과 운동이 민주주의 없이 어떻게 자라날 수 있을까. 대책을 마련하는 바로 그 실용을 위해서도 다시 한 번 강하고 깊은 민주주의를 옹호하려 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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