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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1 21:09 수정 : 2016.06.01 21:09

1999년 9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대학원생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사건이었지요. 5년 뒤 <한겨레21>은 대학의 실험실이 그사이 안전해졌는지를 취재했습니다(2004년 5월27일 511호).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학교는 제대로 책임지려 하지 않았고,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약했습니다. 학교 예산으로 보상하면 책임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이유로, 학교경영자배상책임보험에서 나온 보험금과 교직원들한테서 걷은 위로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했다고도 합니다.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됩니다. 2003년 5월, 이번엔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풍동실험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합니다. 수소혼합가스 용기에서 가스가 새어나오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폭발로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조정훈씨가 숨지고, 강지훈씨는 두 다리를 잃어야 했습니다.

카이스트 사고 이후,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연구자의 상해와 사망에 대비해 그들을 피보험자와 수익자로 하는 연구활동종사자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연구자의 정기 안전교육과 연구실 안전환경관리자의 전문교육도 의무입니다. 하지만 제도엔 허점이 많고, 연구실 문화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게 여전한 현실이지요. 2010년 12월엔 호서대 방폭시험장에서 발생한 폭발로 소방방재학과 오규형 교수가 목숨을 잃고 다섯 명이 중경상을 입는 끔찍한 일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3월 대전 한국화학연구원 실험실에선 학생연구생 한 명이 손가락 두 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화합물을 섞다가 유리 플라스크 속 화합물이 화학작용을 일으킨 결과였습니다. 한데 학교가 아니라 연구소에서 생긴 사건이었는데도, 피해자는 산업재해(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거라 합니다. 학생 신분이라 그렇답니다. 연구활동종사자보험과 상해보험으로 치료비는 받을 수 있겠지만, 장애에 대한 보상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2014년 10월에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소속 학생연구생 등 세 명이 기업 견학 중 폭발사고를 겪은 바 있습니다. 이들 역시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합니다.

대학원생이 연구과제에 참여하며 수행하는 작업은 연구원이 연구소에서 하는 일과 같습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산재보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지요. 그런데 두뇌한국(BK)21플러스 사업에 참여하려는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전일제 대학원생임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입니다. 학생들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불가능한 얘기가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 문미옥 의원은 후보 시절인 지난 4월2일 ‘이공계 대학생과 함께하는 총선 정책토론회’에서 대학원생에게도 산재보험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국민의당 신용현 원내부대표도 5월26일에 비슷한 취지로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대를 걸어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 글은 공과대학 교수인 저의 반성문입니다. 1999년 서울대와 2003년 카이스트의 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학생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눈여겨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늘 밭에 뿌린 하얀 비행기의 꿈>은 촉망받는 항공우주공학도였던 고 조정훈씨를 추모하는 문집의 제목입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즐겁게 연구하는 게 더는 하늘 밭에 뿌려진 꿈이 아니라 이젠 현실이 돼야 하리라 여깁니다. 교수들의 몫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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