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68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 의원 이넉 파월은 이민을 주제로 대중을 선동한 영국 최초의 정치인으로 기록된다.“우리는 미쳤다, 국가 전체가 말 그대로 미쳤다, 매년 5만명의 이민자 가족의 입국을 허용함으로써 우리는 장례식에서 스스로를 화장할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고 있다. 늘어나는 이민자에 의해 로마인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티베르강이 붉은 피로 물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실제 매년 최대 2만명을 5만명으로 과장한 파월의 이 연설은 세계를 아우르는 다인종, 다문화 제국으로서 대영제국의 위상을 포기하고 백인 중심의 작은 잉글랜드를 향한 영국의 선회를 부추긴 공개적인 첫 시도였다. 사람들이 이민자에 대해 갖는 경계심은 자연스런 감정이다. 동질적인 이웃들에 익숙해 있던 원주민에게 인종과 문화, 종교가 다른 낯선 이의 등장은 긴장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이민자를 향해 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연민과 인도주의적 감정을 동시에 갖는다. 일반 사람들이 갖는 경계심과 인도주의적 감정의 균형이 무너지고 낯선 이에 대한 공포가 지배하는 시점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정치인들의 선동이 개입할 때다. 그들은 이민자가 당신의 안전과 복지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민 및 난민의 증가와 복지국가의 앞날을 연계하는 것은 반이민 진영의 가장 강력한 논리다. 이 논의의 전제는 다양성이 증가하고 정체성의 정치가 강해지면 이질적인 시민들 사이에 합의가 어려워지고 재분배 정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복지국가는 쇠퇴한다는, 이른바 다양성과 재분배 교환 가설이다. 그러나 많은 경험 연구들은 이민자 수보다는 여성인구, 노령인구, 좌파정부의 집권 여부 등이 복지예산 지출에 주요 변수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복지국가 쇠퇴의 모든 원인을 사회적 소수에게 돌리면서 교환가설을 신뢰할 때 그것은 이방인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비방 속에 그들을 낙인찍음으로써 결국 스스로 원하는 목적을 실현해 가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주의를 둘러싼 갈등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고 있는 원인은 대체로 세 가지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다문화 이행의 속도와 폭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인 이주자 다수가 아직까지 다문화적 권리보다는 동일 임금, 동일 노동조건 등 자유주의의 보편적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둘째, 우리가 이룩한 민주주의가 세계 수준에서도 손색없는 보편적 인권을 이주자에게 보장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와 민주화 세대의 정치적 올바름이 다문화주의에 대해 너그러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셋째, 이주자와 정부를 매개하는 시민사회 내부에서 다문화주의가 아직 극우집단의 의제로서 본격적으로 설정되지 않았고 이주자 지원 시민단체 가운데 대부분이 신 앞에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며 보편적 담론을 펼치는 종교단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주자들 사이에 영주를 원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는 특별한 주목을 필요로 한다. 다문화적 갈등이 본격화하기 전에 우리가 우선 해결해야 할 일은 사회적 소수의 선호를 표현할 정치적 권리 보장과 민주적 공론장을 만들어내고 자유주의의 보편적 세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정적 관습을 타파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룩한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중심으로 이주자들이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가 되어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통합을 이루는 일은 외부의 선동이 부추기는 공포에 지배받지 않고 경계심과 인도주의적 감정의 균형을 잃지 않을 때 가능할 것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