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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13 17:50 수정 : 2016.07.13 19:19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혈압 잴 때 환자분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리고 싶은데, 그 시간 내기가 어렵네요.” 이 글을 준비하느라 만난 4년차 간호사의 말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 간호사 수가 다른 데보다는 많다는 곳, 그것도 중환자는 적다는 병동에서 일이 너무 많아 환자에게 말 건넬 시간조차 모자란다니.

밤 10시 반까지 일하는 오후번 간호사는 걸핏하면 자정을 넘겨 퇴근한다고 한다. 일이 익숙하지 않은 신규는 새벽 1시나 2시까지도 늦어진다니, 기막힌 일이 아닌가. 그 힘든, 발암물질에 버금간다는 밤(나이트) 근무는 공식적으로만 9시간 반이나 된단다.

간호사만 힘든 것도 아니다. 숫자로 보는 전공의(레지던트)의 장시간 노동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2014년 대한의사협회가 조사한 1년차 전공의의 일주일 근무시간은 115시간(!)이 넘었다. 작년 말에 ‘전공의특별법’을 만들면서 한도를 정했다는 것이 88시간이다. 법대로 해도 일주일 내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이런 노동을 ‘착취’라 하지 않으면 어디에다 이 말을 써야 하나.

착취당하는 노동은 ‘불량’할 수밖에 없으니, 이런 병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그냥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임을 강조한다. 바로 어제 들은, 병원에서 밤 근무를 할 때마다 조바심을 낸다는 한 약사의 고백이 그랬다. “근무 내내 너무 바빠, 혹시 사고를 낼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이 정도면 환자 말을 들을 시간이 없다는 불만조차 한가롭게 들린다. 병원 노동이 실패하면 돌봄이나 따뜻함은 둘째다. ‘저질’의 의료, 심하게는 오진, 의료 사고, 병을 고치러 갔다가 병을 얻는다는 의원병(醫原病) 따위가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

착취(당)하는 노동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만큼이나 노동자를 파괴한다. 글머리에 인용한 바로 그 간호사의 말로는 자신의 업무량이 최소 기준으로도 40% 이상 초과한 수준이라고 한다. 제대로 간병하려면 담당 환자 수가 지금의 3분의 1까지 줄어야 한다고도 했다. 자본주의 경제와 그 노동이 늘 훈계하는 직업적 의무조차 다하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그가 안타까웠다.

눈코 뜰 새 없이 일해도 최소 의무조차 다하기 힘든 노동에서 무슨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노동이 자아실현이나 성취감과 거리가 멀다면 지치고 무력해지며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병원 노동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최근 한 국립대학교 병원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해 안에 15%가 넘는 신규 간호사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디 병원만 그런가, 타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맞는 말이다. 비정규 노동이 그렇고, 그 많은 알바와 열악하기 짝이 없는 가족 자영업도 모두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의 일부이고 또한 피해자다. 병원이 그나마 좀 더 나은 구석이 있을지 모르지만, 더하고 덜한 것은 일단 미뤄놓자. 특별히 병원을 말하는 것은 노동 착취의 ‘외부효과’, 즉 환자에게 돌아가는 피해 때문이고, 그래서 좀 더 급하다.

한마디쯤은 해결 방향도 말해야 하지만, 구조적인데다 서로 물고 물린 문제니 쉽지 않다. 짧은 글에서 다 말하기는 어려우나,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가 여럿 걸려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한 가지.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수가(진료비 보상)가 그중 한 가지 이유라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 이 때문에 보험료와 정부 예산이 늘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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