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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5 18:35 수정 : 2016.07.25 18:54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운명의 향방과 관련해 개인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놓고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노력, 재능, 위험의 감수 등을 포괄하는 개인적 요인은 ‘능력’(merit)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20세기 이후 현대 사회는 ‘신분’이나 ‘연고’와 대비해 ‘능력’을 강조해왔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사람들의 성공이 외부적·환경적 요인보다는 각자의 행동에 좌우되도록 함으로써 더 높은 경제성장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하자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는 최근 들어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의 성공이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개인적 요인에 의해 설명된다는 경험적 판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능력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 머리가 좋으며, 더 많은 위험을 감내한 결과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다. 그렇기에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된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자신의 몫을 더 키우기 위해 불법이나 편법을 저지른 뒤에도 그토록 당당한 것이나, 미국에서 억만장자가 공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도 이러한 믿음이 굳건히 떠받쳐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여기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나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은 우리 사회는 물론 선진국들에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성공을 그들의 노력과 재능 덕분으로만 돌리는 것이 승자들의 판타지라면, 그것들을 반칙과 협잡의 결과물로만 해석하는 것 또한 지나친 단견이다. 오늘날 성패를 좌우하고 결과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능력도, 편법도 아니고, 운(luck)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재능도 있고 노력도 많이 기울인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부와 명예를 거머쥐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도 뛰어난 재능과 남다른 노력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어떤 결과가 특정 개인을 넘어서서 여러 사람들과의 복잡한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단행동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성공과 실패를 오롯이 당사자의 몫으로만 돌릴 경우, 승자에게는 과도한 칭송과 보상이 집중되는 반면, 패자에게는 지나친 비난과 부담이 전가된다. 극소수의 승자는, 자신이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신의 노고와 분투와 기여에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세상에 화를 낸다. 다수의 패자들은, 기득권층과의 싸움을 통해 사태를 개선할 투쟁심도, 불운을 탓하며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긍정심도 키우지 못한 채, 처지가 더 열악한 약자들에게서 열패감을 해소할 배출구를 찾는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광범위한 분노와 불안의 정서는 지나친 능력주의로 인한 공동체의 와해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결과가 운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보상의 격차에 일정한 한계를 부여하는 사전적 제약이나, 아니면 세금의 누진성을 대폭 강화하는 사후적 제약이 요구된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존중되는 ‘능력’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다. 집요한 이익 추구, 공격성, 무자비함 등과 같은 약탈적 능력으로부터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하는 능력, 불이익이 예상되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와 같은 덕성적 능력 쪽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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