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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김일성 일가의 삼대세습은 북한이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라는 증거로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김일성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김일성이 더 옛날에 태어났다면, 가령 2천년쯤 전에 태어나서 북한이 아니라 진한이나 변한을 다스렸다면, 그는 “부자세습을 확립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고대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고, 신라의 눌지왕, 고구려의 고국천왕, 백제의 근초고왕과 더불어 시험문제에 단골로 등장했을 것이다. 고대사 서술에서 부자세습의 확립은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간주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규칙이 없다면 왕이 죽을 때마다 그 뒤를 이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삼대세습 역시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한 나름의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해결책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왕은 여러 명의 아들을 둔다. 큰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해도, 더 영리한 다른 아들에게 마음이 갈 수 있다. 또 왕비에게 아직 후사가 없는데 후궁이 먼저 아들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곧잘 피비린내 나는 암투와 친족살해, 그리고 사화로 이어진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가족 중의 누군가를 죽였다. 태종은 두 아우를 죽였고, 세조는 어린 조카를 죽였으며, 성종은 아내를 죽였고, 광해군은 새어머니와 의붓동생을 죽였다. 인조는 아들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위대한 계몽군주로 칭송받는 영조 역시 아들을 뒤주 속에 넣어 죽였다. 조선시대가 어느 시대보다 인륜을 강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군주들의 이러한 패륜은 놀랍게 느껴진다. 왕인들 피붙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겠는가? 이런 친족살해는 사실 왕의 개인적 품성과 무관하게, 당파싸움의 와중에서 신하들의 집요한 상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정치세력도 오늘날처럼 여러 개의 당파로 나뉘어 있었지만, 현대적인 정당정치와 달리 그들의 권력다툼에는 투표를 통해 국민의 신임을 묻는 과정이 없었다.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왕의 말 한마디였다. 따라서 그들은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의 입에서 원하는 말이 나오게 하려 애썼고, 나아가 자기들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왕으로 앉히고 싶어 했다. 조선시대에 세자가 아닌데도 왕이 될 재목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현명한 대군들은 정치적 야심을 감추고 사실상 은둔의 삶을 살았다(김정은의 형제들이 모두 공적 무대에서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선거라는 중재 장치의 장점이 분명해진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그러나 선거의 진정한 미덕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선거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현재 우리의 법은 일단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사실상의 독재를 허용한다. 4대강 사업이 좋은 예이다. 4대강 사업이 끔찍한 재앙을 낳을 거라고 경고한 전문가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독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제 우리는 선거 외에도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보장해줄 다른 제도적인 장치들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령 결선투표 제도를 만들고, 결선투표 시 최종 후보 두 명의 주요 공약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게 하면 어떨까? 물론 그렇게 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을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밀어붙일 때의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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