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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1 18:21 수정 : 2016.08.01 20:33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이후 온 사회가 분노했고,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 발언을 한 사람을 개인적 일탈행위를 한 사람으로 치부하면서 그는 파면되었다.

그러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전문직이나 엘리트 집단과 같이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다. 특히 이러한 보편적인 정서는 학교에서 공통감각으로 양성된다. 그래서 국민 개돼지 발언은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 발언을 재벌가 사람이 했다면 우리는 “아! 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 다른 계급이니까!” 하면서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이 특수한 신분을 허용하지 않는 능력주의 사회임에도 신분의식이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신분의식’은 학생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형성된다. 학생들은 약자들과 배우지 못한 자들을 주인의 범주에서 제거하고, 각성한 민중의 뜻과 힘보다는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하도록 배운다. 특히 선거날만 빼고 다수가 침묵하며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는 체제를 학교조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써 다수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가는 조직보다 능력있는 자가 조직의 리더가 되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을 선호하고, 조용함과 일사불란함을 추구하게 된다. 학생들은 일종의 귀족주의와 결합해서 민주주의를 바라보면서 계몽된 소수가 다수에게 책무를 갖는 것을 민주주의로 간주하게 된다.

이렇게 학생들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민주주의는 전적으로 반성적인 과정 또는 정치 행위자들 사이의 토의적 또는 협의적 과정이라기보다 교육청이나 교육감, 교장이 학교를 위한 결정, 교사를 위한 결정, 아이들을 위한 결정을 내려주는 것, 즉 결과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나향욱은 대한민국 학교조직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나향욱처럼 국민을 개돼지라고 생각하는 능력있는 사람을 학교조직을 통해 길러내고 있는 것이며, 교사와 학부모는 이런 문화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다.

본래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학교조직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관료제적 시스템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우월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기초하는 원리, 즉 통치를 위한 모든 자격을 배제하는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학교는 이를 학교의 행정, 문화, 교육과정, 시설 속에서 구현함으로써, 학생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어린 나이부터 이런 환경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면, 통치자는 피통치자와 같고, 청년들은 장년층과 대등하며, 노예들은 주인들처럼, 학생들은 교사들처럼, 동물들은 그들의 주인들처럼 대우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직접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는 지금의 삶의 문제에 참여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이며, 좋은 삶을 추구하면서도 공동선을 향해 나아갈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사회다. 그래서 ‘신경쓰지 말자’ 주의와 과감하게 결별한 사람들, ‘나한테 무슨 소용이야’라며 투덜거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다. 대한민국이 능력있고 합리적이며 자신감에 가득 찬 시민들의 나라가 되려면 시민이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주장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흔쾌히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감히 알려고 하라! 감히 모든 조건과 무관하게 참여하려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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