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10 18:05
수정 : 2016.08.10 19:18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어르신, 장애인 등 필요한 분들이 원격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계와 정치권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린다.” 대통령이 충남 서산의 노인요양원을 찾아 원격의료를 허용하자는 취지로 말한 내용이다. “이런 좋은 혜택”을 받는 “사업이 본격화하면 국민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원격의료가 뭐기에. 보통은 “환자가 의료기관을 가지 않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을 뜻한다. 컴퓨터를 통해 서로 보고 듣는 것은 기본이고, 의사가 엑스레이를 판독하고 앞으로는 간단한 검사도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게다가 컴퓨터(!)라니, 첨단과 발전, 정밀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렇게 좋은 것이면 왜 대통령까지 나서서 당부하고 설득해야 하나,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의사들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것이 첫째 이유일 터. 원격의료로 무슨 진료를 제대로 하겠느냐는 비판이 제일 많고, 나도 100% 동의한다. 필시 엉터리 진료가 되기 쉬운데다 안전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의사들의 판단이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도, 원격의료는 보조 역할을 넘어 직접 진료를 대신할 수 없다. 모자라는 기술은 개선하면 되지만, 사람살이의 현실은 온전하게 전송과 재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상상해 보라. 따뜻한 또는 차가운 손길을 느끼고 깨닫는 것은 언감생심, 아무리 초정밀인들 생각하고 느끼며 반응하는 ‘그’를 재현할 수 있을까. ‘그’는 저쪽에 비현실적인 디지털로 존재할 뿐, ‘만남’은, 그리하여 진짜 진료는 이루어질 수 없다.
퍼뜩 ‘원격회의’가 떠올랐다. 많은 공무원이 돈과 시간을 쓰며 출장 중인데도, 서울과 세종 사이의 간단한(!) 원격회의는 왜 늘 말뿐일까. 모이기도 힘들다는 국무회의는? 그러다가 상상은 탈주했다. 대통령은 왜 ‘원격출장’을 택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건대, 그 출장을 준비하는 회의도 비(非)원격에 아날로그였을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으면, 많은 것이 원격의료와 겹친다.
원격의료가 의료 ‘영리화’를 부추긴다는 것이 또 다른 반대 이유다. 정부는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대통령의 말이 확신을 더 굳혀 놓았다. 원격의료가 “신산업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것이며, “기기와 장비도 함께 발전해” 나갈 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반대론자들(나도 속한다)이 말하는 영리화가 더도 덜도 아니고 이런 뜻이다. 건강과 편의는 이룰 수 없는 형식 목표일 뿐, 우리는 돈벌이와 영리, 그것도 일부 산업과 대기업의 이익이 원격의료 주창자들의 본심이라고 생각한다.
반대 이유는 여기까지. 논리가 허약한데도 정부가 이처럼 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새로 생긴 관심사다. 환자의 이익이라 해도 그렇고, 성장과 영리가 목표라 해도 마찬가지다. 정말 환자가 걱정이면 주치의 제도와 왕진이 더 빠르고 확실하다 하지 않는가. 원격의료만으로는, 더구나 지금 식으로는 어느 쪽도 이루기 어려운데 왜 강박적으로 집착할까.
궁리 끝에도 한 가지 이유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바로 정책목표의 물신화, 그리고 물신숭배. 대통령과 행정부 모두 원격의료의 혜택과 가치에는 더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법을 바꾸고 정책을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 남았다. 정책의 의미와 효과는 소외되고, 껍데기 목표만 절대 가치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니 비슷하게 ‘형해’만 남은 정책이 수두룩하다. 사드 배치, 노동개혁, 청년실업 대책, 구조조정은 진작부터 의미가 아니었다. 위기인가 기회인가, 목표를 다시 묻고 의미를 되새겨 성찰해야 할 정책이 너무 많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