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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3 18:13 수정 : 2016.10.04 10:08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세계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세계의 장기금리가 하락했고 인플레이션도 심각하게 낮아지고 있다. 장기정체라는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는 듯하다.

저성장, 저금리 그리고 저인플레이션은 바로 한국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0.8%로 미약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올해 성장률도 3%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1% 미만으로 떨어졌고 8월에는 작년 대비 0.4%에 불과하여 디플레이션이 남 일이 아니다. 최근 장기국채 금리도 1.4%까지 급락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미래에 경기가 부진하고 인플레이션이 낮을 것이라 기대한다는 뜻이다. 제조업가동률이나 기업파산을 보면 실물경기는 거의 위기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현실은 경제의 총수요 부족을 반영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기댈 곳은 역시 정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한국 정부의 재정정책은 확장적이지 않았다. 내년 정부예산안도 경상성장률보다 정부지출 증가율이 훨씬 낮아서 역시 긴축적이다. 세수가 약 19조원 늘어나는데 지출은 약 14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나아가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비율의 관리를 법제화하겠다는 재정건전화법의 추진은 증세 없이 복지지출만 억누르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미래의 재정건전성도 좋지만 현재는 불황을 피하는 것이 더 중한 일 아닐까. 통화정책의 한계에 직면한 여러 선진국에서 재정정책으로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황이 잠재성장률을 낮추어 미래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을 위해서도 재정확장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한편 총수요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의 회복도 지지부진하다. 올해 2분기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제로였고 평균소비성향은 70.9%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정부는 소비를 진작하겠다고 세일 축제를 벌이지만 지갑에 돈이 없고 미래가 불안한데 누가 선뜻 지갑을 열 것인가.

소비 증가를 가로막는 걸림돌 중 하나는 여전히 심각한 불평등이다. 부자들이 소비성향이 낮음을 고려하면 복지 확대와 공정한 증세 등 소득 재분배가 내수 부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원청기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단체교섭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하청기업의 노조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등 노조도 없는 90% 노동자들의 단결권 확대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97년 이후 국민소득에서 임금의 몫이 가파르게 감소했고 하위 90%의 소득 비중도 크게 낮아졌다. 대다수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소비가 주도하는 새로운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미국에서 양극화 심화로 소비가 정체되어 경제회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고, 특히 중산층을 살리려는 노력으로 노동자들의 단체교섭을 위한 권리 강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현재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불평등의 이중의 덫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 앞에서 여러 정치인들은 온갖 이름의 무슨무슨 성장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에는 대부분 비판적이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덫을 끊어내기 위해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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