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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교수·시민자유대학 이사장 “광주시민들이 이정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가지고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키고 배려했다.”(2015년) 그의 말대로라면 단식을 해서라도 은혜에 보답할 만하다. ‘정현스럽다’는 조롱을 받으며 끝난 그의 단식 정치는 이처럼 사사로운 관계에서 시작했다. 이정현의 단식은 오직 한 사람, 그를 쓰레기통에서 꺼내준 대통령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사적인 선물 정치다. “미르재단의 800억 모금은 전경련의 자발적 모금 활동이다. 세월호 때도 거의 900억원 모금을 금방 했다.” 광주가 왜 그를 쓰레기통에 버렸고 또 버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쓰레기에 버금가는 그의 이런 충성 서약도 우병우와 최순실, 그리고 차은택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냄새까지 제거하진 못했다. 냄새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닫으면 닫을수록 어둠 속 쓰레기 속에서 더 많은 구더기가 자랄 뿐이다. “쓰레기장을 조사하여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실태를 알아보는 ‘가볼러지’(garbology)라는 사회학의 수법이 있다는 것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애매모호한 설문지보다는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더욱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쓰레기야말로 숨은그림찾기의 모범답안이다.”(하성란, <곰팡이꽃> 중에서) 슬픈 일이다. 진실이 쓰레기통 속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남의 집 쓰레기봉투를 함부로 뒤지는 것은 사생활 침범이자 인격 침해다. 비록 내다 버리는 물건이라고 하지만 쓰레기 속에는 감추고 싶은 무엇인가가 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쓰레기라고 해서 남의 것을 뒤지는 것은 남의 내밀하고 은밀한 곳을 훔쳐보는 관음증에 가깝다. 그런데 아무리 사적인 쓰레기라도 공적 장소를 침범하고 더럽히면 까발려서 그 주인을 찾아 공개해야 한다.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 되면 음란해진다. 연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성애도 만인에게 공개되는 순간 외설적인 음란 행위로 둔갑한다. 그러니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공적으론 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지 않으면 애틋한 친구조차 포르노 배우처럼 공공성의 광장에서 발가벗겨질 수 있다. 아마도 이런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 대통령의 지금 심정은 참담할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음란해지는 외설 정치에 대한 책임은 그의 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친밀성과 공공성의 세계를 왕래하며 살아간다. 두 세계는 다소 겹치기도 하지만 분명 다른 원리에 의해서 작동하니 뒤섞으면 안 된다. 친밀성은 공감과 신뢰로 짜인 반면 공공성은 공정과 공개로 형성된다. 독일 철학자 칸트의 말처럼 공개할 수 없는 것은 심지어 공정한 경우에도 공공적일 수 없다. 공익을 위한 은폐라도 떠벌리는 사람은 실제로는 사익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논리로 대통령의 친구들이 대통령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 한편에 차마 버릴 수 없는 쓰레기로 흐트러진 서랍이 있다. 그 속에 들어와 얼룩으로 뒤엉킨 나만의 상처를 공유한 사람은 은밀한 친구다. 이런 친구는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하고만 나랏일을 도모하다 보니 열어봐야 할 쓰레기봉투가 즐비하다. 대통령의 친구 정치에서는 기밀을 누설하고 지옥에 갇힌 탄탈로스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이 정권은 가볼러지, 곧 쓰레기학의 조사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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