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26 18:43
수정 : 2016.10.26 20:14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지난봄 나는 어느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로 석 달간 참여하였다. 진행자와 나, 그리고 또 한 명의 출연자가 시사문제에 대해 가벼운 논평을 하는 형식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하나는 전문성에 관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박사님’으로 불렸는데, 이는 내가 전문가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와 있음을 암시하면서 내 발언에 무게를 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한 말들은 전문성과는 무관한, 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명사들’ 혹은 ‘인텔리들’을 모셔다가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은 일제강점기 이래 계속되어온 전통이다. 인텔리겐치아란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사회에서 근대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의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 때문에 전공이나 직업과 무관하게 지식인으로 대접받으면서 여론을 이끌 책임을 맡는다. 인텔리라는 말이 오늘날 사어가 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고등교육이 일반화되면 이 집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박사님’이라고 불리면서 마이크 앞에서 시시한 수다를 늘어놓았던 경험은 나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기는커녕, 인텔리와 대중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구별 속에서 다른 시민들의 발언권을 부당하게 빼앗고 있다는 자괴감을 일으켰다.
또 하나는 ‘캐릭터가 되는 위험’에 대해서이다. 사실 피디가 나에게 기대했던 것은 엔터테이너의 역할이었다. 개인적인 매력과 전문적인 소양을 뒤섞으면서 청취자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것. 이것은 대학 바깥에서(혹은 대학에 한 발을 걸친 채) 대중 지식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들의 존재양식은 연예인과 비슷하다. 미디어 노출을 통해 인지도를 얻은 후에 주수입은 강연시장에서 벌어들이는 것이다.(연예인들이 행사를 뛰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들은 아이돌이 그렇듯이, 어떤 영역의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총체적인 인격으로서, 더 정확히 말하면 캐릭터로서 대중에게 다가간다.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사용이 지식인의 이러한 변신을 돕는다. 에스엔에스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말과 글의 차이를 지우며, 의견과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든다. 대중은 그의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일종의 가면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다. 캐릭터에 포함되지 않은 인격의 어떤 측면들이 나타났을 때 대중은 놀라고 실망하며 그 캐릭터를 통째로 ‘버린다’. 예를 들어 어떤 논객이 과거에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는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그가 썼던 책 전체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또한 그가 속해 있는 집단 혹은 진영은 말할 수 없는 타격을 받으며, 그가 지지하는 대의 역시 평가절하된다.
사르트르 이래 우리는 골방에서 두꺼운 학술서를 쓰는 지식인보다는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인을 (적어도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더 높이 평가해왔다. 이제 우리는 이 생각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에스엔에스 시대에 지식인이 할 일은 바로 에스엔에스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사이다 발언’을 하는 지식인을 따라다니면서 ‘좋아요’를 날릴 게 아니라, 둘이든 셋이든 모여서 책을 읽어야 한다. 모든 시민이 스스로 배우고 공론장에서 동등하게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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