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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07 18:11 수정 : 2016.11.07 18:58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지난달 <에스비에스>(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회복지시설 대구 희망원의 비리와 인권유린에 대해 보도하며 이렇게 끝을 맺었다. ‘희망원은 그 운영권을 반납해야 한다. 이 사회에는 소외된 사람들을 진심으로 돌보고 위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좋은 사람’이 운영하면, 그래서 ‘좋은 시설’이 되면 거주인의 인권이 보장될 거라는 이런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가능한가. 희망원은 이 질문을 매우 상징적으로 던지고 있다. 대구광역시가 설립하고 천주교재단이 운영하며 6년 연속 ‘우수시설’로 선정된 희망원. 심지어 직원들의 만족도까지 최고인 명실공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설에서 역사상 최악의 거주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좋은 사람, 좋은 시설’을 이제 누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스무 살에 야학 교사가 되어 군대를 다녀와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갔던 후배가 있었다. 늘 학생들을 웃기고 싶어 하던 엉뚱하고 순한 녀석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활동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한달에 200만원쯤은 받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싶다던 그는 한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취직했다. 부모 없는 장애 아이들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한참 후 그를 만났을 때 어느 비리 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별생각 없이 물었다. 거기도 때려? 후배가 대답했다. 네. 당황한 내가 머뭇머뭇 다시 물었다. 너도 때려? 후배는 잠깐 쉬었다가, 평범한 직장인의 얼굴을 하고선 대답했다. 안 때리면 통제가 안돼요.

2012년 꽃동네에 처음 방문했을 때, 한 남자가 복도에 앉아 팔을 바닥에 짚고 엉덩이를 밀며 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속도가 하도 느려서 그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지나가던 직원이 “○○씨, 왜 내려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이유가 궁금한 건 아니었던지 직원은 남자가 대답하기도 전에 인터폰을 들고 말했다. “○○씨 내려오셨습니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내려와 남자를 휠체어에 태웠다. 족히 두어 시간은 걸려 내려왔을 그 길을, 남자는 단숨에 돌아갔다. 시설이란 어떤 곳인지 그들의 뒷모습이 인상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2001년부터 비리 시설들을 쫓아다니며 거주인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활동가들이 있었다. 지옥문을 열어 갇힌 사람들을 구했고 비리를 파헤쳐 끝내 시설을 폐쇄시켰다. 그러나 아무리 싸워도 시설 비리는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무엇보다 그들을 절망케 했던 것은 문이 열렸음에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시설 바깥엔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2005년 활동가들은 전국의 시설들을 찾아다니며 거주인 774명을 만났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와 시작된 생활, 이 벽 보고 누웠다가 저 벽 보고 누웠다가를 반복하는 하루, 한번도 불려본 적 없는 이름, 엄마가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며 보낸 10년.’ 그들의 간절한 눈빛과 생생한 증언은 단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를 주창한 탈시설 운동의 시작이었다. ‘좋은 시설은 없다!’ 이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희망원 사건의 대안은 희망원 안에 없다. 갇힌 사람들을 희망원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희망이다. 시설을 폐쇄하고 시설에 들어가던 예산을 거주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에 써야 한다. 그것은 또한 지난 2년간 희망원에서 희생된 129명의 간절한 소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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