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11.15 17:54 수정 : 2016.11.15 20:08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의 실체는 신비로운 장막 같은 것에 가려져 있었다. 조찬과 만찬 행사가 거의 없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일정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궁금하였다. 그의 언술체계는 번역기가 필요할 만큼 여러 코드로 채워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16일만 대통령의 동선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일까? 박근혜의 청와대는 기존의 국정 상식과 어긋나는 일을 만들었다. 비서실의 수석들은 대통령과의 독대는 고사하고 대면보고도 쉽게 하지 못했단다. 대통령과 국정 논의가 사라진 청와대는 과연 어떻게 작동하였을까? 청와대 입성한 교수들과 전문가들은 그러한 청와대에서 어떻게 국정을 수행했을까? 이 정부에서 2년간 장관을 지낸 어느 교수는 참담함을 느끼다 못해 자신과도 같은 “불행한 국무위원이 다시는 이 땅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탄식했다. 문서 유출로 청와대에서 경질된 사람은 대통령이 권력 서열 1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때 나는 “설마?” 하며 믿고 싶지 않았다.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는 화두를 툭 던졌을 때, 국정교과서 편찬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통령이 국민의 혼을 언급했을 때도 나는 그래도 어떤 이성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결정과 개성공단 폐쇄 결정 또한 나름의 논리가 있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수긍할 수도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국민은 그 신비로운 장막이 바로 최순실과 그의 비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환멸과 좌절, 분노로 점철되는 이 적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이제는 알겠다. 대한민국의 지난 4년이 송두리째 도난당했다는 것을. 혹시라도 지난 4년 정치에 소통과 협의라는 민주주의의 미덕이 미신정치에 의해 송두리째 뭉개졌을지도 모른다는 어이없음이 가득하다.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 있지만, “창조” 경제, 문화 “융성”, 민족“혼”이라는 주술의 언어만 난무했다.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종북의 칼로 재단하였다. “통일은 대박”은 용역과 콘퍼런스로 지식인들을 한곳으로 줄 세우는 기준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국가는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은 위기 때마다 “북한 때문에”, “엄중한 안보위기 때문에”, “국가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라는 위기감으로 국민을 겁박했다.

사람들은 국정 공백이 초래할 국가적 위기를 걱정한다.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의 원인이다. 박근혜 정치를 단절하지 못하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와 개성공단 폐쇄, 한일 위안부 합의 그리고 백남기 농민 사망 때처럼, “그만하면 됐다”는 홍위병의 논리로 이 위기를 어물쩍 넘기려 할 것이다. 그에게 지금은 개인 비상사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 난국을 국가 비상사태라는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이다. 개헌 카드가 바로 그러한 프레임이었다. 또 다른 시선 돌리기, 또 다른 프레임 기교로 현 국면을 해결할 수 없다.

나는 최소한의 상식이 대한민국을 진보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 상식은 불법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의 불법도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명령이다.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했던 그 순간부터 이 법치의 상식 앞에 제외될 수 없다. 최소한의 상식이 실현될 때 민주와 민국은 진보하며 일상이 온전해진다. 5%의 지지율과 120만 촛불은 국민이 이미 그를 탄핵했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비로운 청와대의 장막을 걷어내고 법의 심판을 받는 들판으로 내려와야 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