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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1 18:33 수정 : 2016.11.21 19:01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근대교육은 학력, 직업, 직위와 같은 성취가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얻어진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능력으로서 지능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성취 경쟁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이 받아들이는 경쟁의 전제다. 따라서 만약 어떤 개인이 공부를 잘 못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좋은 직장도 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취와 지능의 문제가 되며 개인은 이러한 성취수준으로 인한 불평등을 감내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교육 불평등은 교육받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평등이 몸과 마음에 체화된 결과다. 다시 말해 지능과 성취수준은 유전된 재능에 대한 사회경제구조의 영향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영양상태, 교육환경, 가정생활, 아동양육 방식 및 사회적 기대와 같은 요인들이 각 개인이 타고난 잠재력이 발휘되게 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는데도 여전히 지능과 성취가 개인의 문제라고 말한다면 교육에서 계층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지능과 성취는 경제적 조건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라는 요소가 상호작용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시장의 차별은 저소득층을 양산하고 이들의 건강, 교육수준, 생활수준 악화로 이어지며, 저소득층 자녀들의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의 형성과 역량의 실현을 막고, 이들의 건강, 교육, 생활수준을 재차 악화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결국 빈곤이 빈곤을 낳으며, 경제적 소득이 낮아 지능을 발달시키지 못한 사람은 자녀의 지능에도 영향을 미쳐 부진이 부진을 낳는다. 이 결과 부유한 계층의 자녀와 빈곤한 계층의 자녀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는 것처럼, 지능과 성취의 격차도 점점 확대된다. 부유한 계층의 자녀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경제적 부와 함께 성취와 지능에서도 저소득층 자녀를 능가함으로써 자율성과 독립성이 증대되는 한편, 저소득층 자녀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성취와 지능 면에서 더더욱 자율성을 훼손당하고 이들의 지배하에 놓여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사교육의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경제적 지위가 교육투자, 직장의 지위, 또다시 다음 세대의 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주는 연계고리를 고려할 때, 지능과 성취의 누적적 인과관계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계층의 고착화와 단절화, 귀속지위의 심화라는 헬조선 담론과 연결될 수 있다. 이는 교육을 통해 계층의 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을 통해 이들의 상태가 누적적으로 악화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적적 인과관계의 사슬을 끊고 지능과 성취가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은 불평등한 조건에서 태어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공정경쟁과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개인의 지능과 성취가 누적적 인과관계의 산물이라면 기회, 과정, 결과에서 불평등의 조건들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기획되어야 한다. 즉 부모를 비롯한 타고난 여건에 둔감하고 개인의 선택에 민감한 교육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적인 개입과 중재가 필요한데, 그 개입의 방향은 정치적 자유, 사회적 협력, 경제 측면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복지적 개입을 통해 지능과 성취의 누적적 악화가 아닌, 누적적 평등의 증대를 이뤄나가는 쪽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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