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28 18:26
수정 : 2016.11.29 09:35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주 <한겨레>가 주최하는 아시아미래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 덕분에 주말에는 광화문광장 시위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엄청난 시민들의 힘이 마침내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민주주의를 전진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와 함께 대통령 퇴진 이후 정치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미래에 관해서도 더욱 많은 고민과 논의가 발전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몇몇 학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와 재벌의 동맹에 기초한 발전국가 체제는 정경유착과 관치경제의 부작용을 심화시켜, 박근혜의 퇴진과 함께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새로운 경제모델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이들에게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은 향수의 대상이며, 특히 해외에서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평등한 소득분배를 함께 달성한 ‘동아시아 기적’의 대표주자다. 필자는 포럼 발표에서 해방 이후의 토지개혁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평등한 분배가 이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각국을 비교해 보면 토지소유의 평등이 성장에 핵심적인 제도의 발전과 관련이 컸다. 수출 성과에 기초하여 재벌들을 규율하여 투자를 촉진했던 발전국가의 성공에는 기득권세력의 힘이 강하지 않았던 역사적 조건이 중요했던 것이다. 몇몇 정책들도 평등주의적 성장과 관련이 있지만, 박정희 정부는 노동을 억압하고 재벌을 지원하여 70년대에는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80년대 들어 거시안정화 정책과 특히 87년 민주화 이후의 노동자 대투쟁과 임금 상승과 함께 소득분배가 개선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정부에 비해 재벌의 힘이 강해졌고, 성급한 금융개방으로 97년 위기를 맞은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와 시장자유화를 강조하는 구조조정과 함께 불평등은 심화된 반면 성장은 정체되었다. 문제는 최근의 연구들이 강조하듯 심각한 불평등은 소비를 억누르고 교육투자를 가로막으며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포용적 제도의 발전을 억제하여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현재 한국 경제에는 불평등과 저성장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토지개혁이 그랬듯이,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재벌 등 기득권을 억누르고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며 복지를 확대하는 개혁이 꼭 필요할 것이다.
한편 지대추구를 낳는 관치경제의 폐해를 극복해야 하겠지만, 단순히 규제완화나 정부의 축소가 능사는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정한 경쟁의 촉진과 재정의 역할을 고려하면, 우리에게는 더욱 유능하고 더욱 큰 정부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는 다른 선진국보다 작으며, 사회복지지출의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터키보다도 낮은 현실 아닌가. 2010년 이후에는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불평등이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기초연금 등 최근 복지지출의 증가와 관련이 크다. 결국 평등주의적 성장의 복원을 위해 복지국가의 발전과 증세를 위한 새롭고 담대한 노력들이 요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세수와 재분배 효과를 고려할 때, 사회복지에만 지출한다는 전제 하에 부가세의 인상도 고려해볼 만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87년 시민들의 민주항쟁의 승리가 민주세력의 대선패배와 경제개혁의 실패로 이어졌음을 기억하고 있다. 30년 후 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촛불의 힘으로 정치뿐 아니라 사회경제구조의 민주적 개혁까지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