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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30 18:38 수정 : 2016.11.30 20:39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지난 주말 ‘단군 이래 최대 인파’가 한 가지 요구를 위해 운집했다.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직접민주주의다. 주권자가 광장에 모여 자신의 의사를 시위하고 주권을 직접 행사했다. 이들의 요구는 박근혜 퇴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로 시민들의 도도한 요구를 회피하려고 하니 촛불은 계속 타오를 수밖에 없다. 200만에 가까운 촛불이 타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대다수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가?

촛불을 들끓게 하는 근본 원인은 한국 사회에 엄존하는 특권이다. 그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는 특권으로 헌법과 법을 농단하고, 그 특권에 가깝다는 이유로 사익을 채우고, 그 특권에 야합하여 금권과 권력을 누리는 계층이 암약한다는 것이다. 정치권력 2세와 금권권력 2세가 결탁했고, 심지어 사이비종교권력 2세마저 이들과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언론권력도 2세 내지 3세가 이들과 결탁하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며 특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권 2세 사이의 야합과 담합이 시민을 광장으로 내모는 분노의 원인이다.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긴 을사오적은 1970년에 ‘오적’으로 활개를 치고 있었다. 1970년 <사상계>에 실린 담시 ‘오적’이 적시한 대로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이 그 시대의 특수계층이었다. 오늘날 그 2세가 특수계급이다.

이 특수계급에 대한 엄중한 경고, 그것이 촛불이다. 돌이켜 보면 갑오농민전쟁에서 백성이 열망한 것은 남녀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세상이었다. 3·1운동은 독립을 요구하는 동시에 일제의 강점에 항거하는 민의 힘을 과시하여 독립된 국가는 민을 주권자로 하라는 것이었다. 1919년 4월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며 군주정치의 종식을 선언했다.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고 선언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도 “사회 각층의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가짐을 고르게” 한다는 것을 제1장에서 천명하지 않았는가.

현 대한민국 헌법도 이러한 역사를 이어받았다. 그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며 “누구도…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또 “사회적 특수계급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 스캔들이 드러낸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헌법을 위반한 위헌사회라는 사실이다. 민이 100년 넘게 도도하게 요구한 차별철폐를 거부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유럽에서 근대국가의 수립으로 시작된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역사이다.

하여 우리는 지금 세계사적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시민의 성숙한 정치참여, 그리고 이미 세계사의 과거가 되었어야 할 특수계급이 공존하고 있다는 모순을.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시민들은 촛불 구호로 답을 주었다. 박근혜 퇴진. 박근혜 구속. 헌법을 어긴 자는 당연히 탄핵되어야 한다. 법을 위반한 자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헌법과 법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다. ‘박근혜 이후’는 그 출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출발점을 회피하는 모든 개헌 논의와 체제개편 논의는 역사에 대한 반역이다.

누가 ‘명예퇴진’을 얘기하는가. 누가 ‘꼼수’를 부리는가. 촛불은 특권을 태워버리라고 명령하고 있다. 100년 넘은 명령이다. 세계사적 과제이다.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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