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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나는 천년 전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남녘땅 제일의 경치’라 감탄했다는 경남 삼천포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83년 그곳 앞바다에 화력발전소가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발전할 것이다.’ 그들은 로켓처럼 우뚝 솟은 세 개의 굴뚝과 그것들이 뿜어내는 연기마저 사랑했다. 그것은 과연 남녘땅 제일의 경치였다.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빛나고 화려한 것들을 동경하던 그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났고, 부모들은 때마다 자식들에게 돈을 부치고 김치를 보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랑했던 발전소의 전기가 흐르는 방향과도 같았다. 그리고 지난 7월 내 고향의 화력발전소는 남녘땅 제일의 오염물질 배출업체로 지목되었다. 나는 서울 양평동에 산다.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시끄러워진 건 지난 10월. 양평 유수지에서 밤낮없이 진행되던 공사가 제물포터널의 환기구 공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주민들이 백방으로 뛰어 알아낸 결과, 그것은 지름 11m, 깊이 86m(아파트 30층 높이)의 거대한 ‘매연 굴뚝’이었다.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제물포터널 그 자체인데, 그것은 지하 80m 아래에 건설되고 있는 7.53㎞의 어마어마하게 긴 터널이었다. 심지어 지하 50m 지점에선 또 다른 지하도로인 서부간선도로(10.33㎞) 공사가 한창이었고, 두 지하도로가 교차하는 우리 동네엔 무려 4개의 굴뚝이 세워질 예정이었다. 서울시는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며 주요 도로를 지하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원순표 4대강 사업’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수조원의 국민세금과 민간자본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 엄청난 규모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인구 천만의 대도시에 건설되고 있는 지하 장거리 터널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안전성도, 그것이 미칠 환경적 영향도 검증되지 않았다. 터널 바깥으로 뿜어낼 각종 발암·유해물질들을 정화시킬 대책은커녕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관리할 법적 기준조차 없다. 주민들은 즉시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의원 면담도, 시장 면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끝을 모르고 팽창하던 도시는 한계에 부닥쳤고, 자본과 권력은 놀랍게도 지하 세계를 개발하는 것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려 한다. 도로를 늘린다고 교통체증이 줄어들까. 오히려 자동차만 더 늘어나지 않을까. 장기적인 인구 분산 정책이 필요하다고 쓰고 싶지만, 씁쓸하게도 나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어린 시절의 각인이란 정말로 강력해서 나는 여전히 내 고향의 화력발전소가 아름답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그 발전의 동력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 서울은 여전히 유혹적이다. 그러니 이 도시의 불빛을 좇아 온 수많은 ‘나’들이 저 무시무시한 지하 세계의 문을 여는 일에 일조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1월30일 우리 동네 주민들은 영등포구청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박원순표 매연 굴뚝, 환기구를 백지화하라.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김영주 국회의원 사무실의 불은 조용히 꺼져 있었다. 그 순간에도 우리가 딛고 선 땅 저 아래에선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공사 현장을 밝히는 불빛이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희망이 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화력발전소의 거대한 조명이 아니라 백만명이 함께 드는 촛불의 흔들림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 아이들의 미래는 분명 오늘의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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