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12 19:16
수정 : 2016.12.12 19:32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노인정’(gerontocracy)을 제안했다. 50살이 넘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공직을 맡기자는 게다. 로마에서는 ‘원로원’이 그 흐름을 계승했다. 당대의 문장가이자 유력한 정치가였던 키케로에 따르면, 노인은 욕망의 사슬에서 풀려나 절제와 사려깊음의 미덕을 얻은 존재이므로 그들에게 국정을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오늘날 한국은 ‘노인 정치’의 나라다.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은 노인세대였다. 지난 대선에서 20·30대가 70% 전후의 투표율로 문재인 후보에게 66%, 박근혜 후보에게 34%의 표를 주었던 데 비해 60대는 81%의 투표율로 박근혜 후보에게 72.3%, 문재인 후보에게 27.5%의 표를 행사해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정권 출범 뒤에는 ‘올드보이’들이 국정을 주도했고, ‘어버이연합’과 ‘박사모’로 대표되는 노인세대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노인들은 사려깊고 지혜로운 존재였을까? 현대의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 지혜로운 사고의 핵심적 특징들로는 갈등을 풀 기회를 찾아내고 타협책을 모색하려는 의지, 개인적 지식의 한계에 대한 인정, 어떤 문제에 관해 여러 견해가 있을 여지의 용인 등이 거론된다. 요컨대 지혜로운 사람이란 눈앞에 놓인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유연하게 판단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타인의 감정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이다.
우리나라 ‘노인 정치’의 문제점은 진보적이지 않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너무도 지혜롭지 않다는 데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나치게 정치적이었지만, 실체적으로는 정치의 본질과 거리가 먼 것도 큰 문제다. 모든 사안을 대통령의 유불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뿐, 공동체 전체의 문제를 둘러싼 정책적 토론에는 진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사모’로 대표되는 노인들은 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도 못하는 것까? 다시 키케로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노인들이 퉁명스럽고 대화하기 힘들고 화를 잘 내고 까다롭다고 말들 하지.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성격상의 결점이지 노인 특유의 결점은 아니라네. 자신이 무시당하고 경멸받고 비웃음을 산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의 경우에는 그러하다네.”(<노년에 관하여>, 오흥식 역) 우리의 노인들도 바로 여기에 해당될 듯싶다. 이때 그 감정들의 근저에 노인인구의 절반이 절대적 빈곤 상태라는 객관적 현실이 놓여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촛불시위가 무능하고 오만한 정권의 퇴진에 머물지 않고 시대착오적 퇴행의 반복을 막는 확고한 계기가 되려면 사회의 ‘결’을 바꾸는 작업들이 동반돼야 한다. 우리의 노인들이 진정한 ‘현자’가 될 터전을 마련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청년도 행복해질 수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속에 가장 연장자이자 가장 약자인 노인들도 함께할 사회·경제적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능력을 발휘시키는 게 급선무다.
최근 ‘서울50플러스재단’은 시민사회 안의 비영리조직·협동조합과 협력해 노인세대에 일자리와 활동 무대를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전남 영광의 ‘여민동락’에서는 노인들과 함께 ‘복지 너머의 복지’를 꿈꾸며 복지시설·마을기업을 꾸려나가는 소박하면서도 진취적인 실험이 한창이다. ‘노인이 행복한 나라’는 그 어느 정부도 이루지 못했던 미완의 과제다. 그 ‘백일몽’을 현실로 만들려는 뜻깊은 시도들에 많은 관심과 동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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