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13 18:38
수정 : 2016.12.13 19:11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 광화문 앞 세종로의 촛불은 어두운 밤을 환하고 아름답게 밝혔고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했다. 이 광화(光化)한 230만개의 촛불은 유린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대통령에게 배신당한 사람들은 애국가를 목 놓아 부르다 흐느끼기도 하였고, 가슴에 뜨거운 것이 훅 들어오는 묵직함을 느꼈다. “이게 나라냐”라는 그 분노의 외침은 배신당한 나라사랑의 간절함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애국심이다. 애국자들은 대통령이나 그의 정책에 대해 “왜 그렇게 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동의하지 않는 정부 정책과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지도자와 그 세력에 반대하는 그 걱정의 목소리,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분노하는 시민의 마음이 애국심이다.
박근혜 대통령만큼 애국심을 강조한 대통령이 있을까. 그는 그를 향한 비판과 논쟁을 국가의 안보와 사회 기강을 저해하는 유언비어로, 정파적 이익으로, 적을 이롭게 하는 불순한 동기로 취급했다. 그는 늘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 상황”을 강조하며 ‘왜 정부를, 나를 비난하는가’라는 자세로 국민에게 “굳건한 안보정신과 애국심을 발휘해 달라”고 주문했다. 아마도 그에게 애국심이란 대통령이나 그의 정책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 복종을 의미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섬뜩한 데자뷔가 떠오른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선 나치독일 공군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국민을 지도자에게 복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쉽다며 “국민에게 국가가 외국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고 선전하고, 평화론자들은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맹비난하면 된다”고 역설한다. 늘 위기를 강조하고 국민에게 겁을 주는 가짜안보만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몰랐다. 그의 애국심은 위선이었다. 그것은 가짜 애국심이다. 국정운영이 독선과 불통으로 점철되어 있었음에도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마저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점하려 했다. 애국심은 박사모나, 새누리당이나 보수세력의 독점적 가치가 아니다. 소위 애국의 길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여러 개의 애국심이 나라의 투명한 법질서와 공정한 시장경제 그리고 튼튼한 평화를 향하는 보편적 가치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스스로를 애국자로 칭하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라고 혹평하였다. 자신의 애국만이 애국심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기본적 차이점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미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한 철학자 토머스 페인은 <상식>이라는 저서에서 “애국자의 의무란 바로 국가를 정부의 권력남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상식이다. 길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을 외치는 것이 애국심이 아니라 국가를 정의롭게 만드는 감시와 저항의 조직된 시민운동이 바로 애국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에는 “소파 애국자”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자기 집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만 정작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그들의 애국심을 거부하며 행동하는 민주시민의 진짜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광장의 광화(光化)한 촛불 하나하나가 박근혜 정권의 변질된 애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정의로운 애국심이다. 비로소 우리는 박근혜 정치의 적폐를 대청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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