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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19 18:17 수정 : 2016.12.19 19:04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우리는 지금 조선왕조 이래 우리의 역사를 엮어온 영예와 치욕의 사건들이 단단히 묶여 있는 상징적 공간인 광화문 광장에서 직접행동에 의한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을 진행 중이다. 역사적으로 광화문 광장에는 바다를 건너온 침략자의 탐욕이, 식민통치를 구사한 제국주의의 권력이, 민주주의를 전복시킨 무력이, 독재에 대한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꽃피우려 했던 고결한 희생이 새겨져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광장에서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고 자각하고, 민주공화국을 정상화하려는 시민혁명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지금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 국회이고, 헌법재판소이며, 청와대이다.

무엇보다 광화문 광장은 민주주의와 정치교육이 이루어지는 시민의 학교이다. 투표하는 날만 유권자이며, 먹고사는 일상의 탈정치 영역에서 허우적대던 사람들이, 주말이면 권력의 주인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일반의지가 된다. 광화문 광장이라는 학교에서는 가르치고 배우는 역할의 경계가 사라지고,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가르친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이, 비정규직 문제가, 헌법 조문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이, 사드 배치 문제가 수업의 주제가 된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교화하거나 강제로 특정 정답을 주입하는 일도 없다. 모든 수업은 논쟁을 통해 진행되며, 각자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광장 주변에 모여서 비정상적 국가권력의 운영을 넘어 정치체제,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토론하는 마당이 열린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평화로운 시위와 자발적인 뒷정리 문화이다. 백만명 이상이 모였는데도 집회가 끝나고 나면 깨끗하게 정리되는 모습, 절제된 행동으로 경찰차 벽에 평화의 스티커를 붙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평화시위를 외치는 모습은 다른 나라, 선진국의 시위와 비교해서도 우리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질서를 지키는 것은 촛불시민이라는 ‘칭찬스티커’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민들은 국가폭력이 일상적인 삶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 비정상적 정경유착에 분노해 모이는 것이다. 광장이 모범생을 만드는 도덕적 공간이 되면, 분노를 표현하는 정치적 공간은 정당한 분노에 눈감고 평화시위의 모범답안을 만드는 공간으로 변질될 수 있다.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은 점심 급식에서 잔반을 안 남기고, 휴식시간에 안 떠들고, 줄을 서서 사뿐사뿐 이동해 선생님으로부터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스티커를 받으려는 학생들의 도덕적 행동으로 왜곡된다.

그런데 정치적 자기계몽의 공간이 모범생을 만드는 도덕적 공간으로 왜곡될 때 나타나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트랙터를 끌고 상경하는 농민들의 분노, 기업주의 횡포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생존권 요구는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 시위’가 되고, 평화를 위협하는 구조적인 국가폭력은 국가와 사회의 안전, 질서를 위한 공권력 행사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범적인 시위문화가 아니라 시민들의 분노이며, 모범시민이 되는 대신 국가권력의 부당한 폭력과 지배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약자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다.

지금 시민들은 광장에서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모범시위 사례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모순적 상황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지배권력의 해체와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이 다음 세대까지 계속되지 않도록 자녀들과 함께 직접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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