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웅 ESC 대표·고려대 공대 교수
옥스퍼드 대학이 ‘he’와 ‘she’ 대신 성(性) 중립성을 나타내는 단어인 ‘ze’를 쓰도록 권유하고 있다 합니다. 영국인들이 이렇게 성과 무관한 표현을 만들려 하는 이유는 뭘까요? 언급되는 대상의 성을 보통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성 변호사에게서 벤츠 승용차를 받은 여성 검사가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나중에 무죄 판결로 마무리되었는데, 이 일은 당시 ‘벤츠 여검사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벤츠 검사 사건’이 아니었지요. 불편했습니다. 여성을 여성이라 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요?
더 이상 덧붙일 내용이 없는 글보다 뺄 게 더는 없는 글이 한 수 위라 여깁니다. 덜어내도 논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는 되도록 빼려 하지요. 같은 정보를 적은 수의 문자로 나타내려 하는 마음은 최적화를 추구하는 이공계 사람들의 공통된 성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불필요한 요소가 문장에 보태지면, 의미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검사에게 선사한 벤츠가 뇌물일 수도 있다는 건 그 검사의 성별과 무관한 논점입니다. ‘벤츠 여검사 사건’은 ‘벤츠 검사 사건’보다 뜻하는 바가 더 많습니다. 추가된 내용이 주장의 일부가 아니라면, 그냥 ‘벤츠 검사 사건’이라 해야 마땅하겠지요. 말이나 글은 듣거나 읽는 이의 몫이니, 덧붙여진 의미가 애초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식의 항변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떤 구성 성분도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더는 뺄 게 없는 글을 쓰려는 태도는 그렇게 독자에 대한 배려와 언어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효율의 단순한 최적화가 아니지요. 정확한 이름을 짓고,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며, 정확한 글을 쓰기 위함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이 성별과 무관한 대명사를 굳이 제안한 연유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꼭 필요한 내용만 담자는 거지요. 다행히 우리는 특별히 성 중립적 인칭대명사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여성과 남성을 다 ‘그’로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녀’가 여성 인칭대명사로 널리 사용되면서 ‘그’가 남성 인칭대명사처럼 인식되는 면이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새로운 인칭대명사까지 만들려 하는 시대적 변화를 헤아리면, 성별과 무관한 대명사로 ‘그’를 적극 활용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라 해야겠지요.
박근혜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사실과 직결되지 않는 문제를 다룰 땐, 여성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박정희를 남성 독재자라 하지 않고 그냥 독재자라 부르듯 말입니다. 박근혜는 촛불 민심을 철저히 무시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 운운하며 탄핵 심판을 형사 재판으로 몰고 가려 합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상적으로 근무했다고도 했습니다. 최순실의 국정 관여 비율이 대통령 국정 수행 총량의 1% 미만이며 이마저도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궤변의 극치였지요. 후안무치입니다. 그는 공감 능력이 없으며, 공과 사를 구별할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 그녀라는 단어를 써야만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알맞은 이름으로 정확히 문제를 짚어야 논점이 흐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말) 신속한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시민과 탄핵에 반대하는 박사모 등을 대치시키며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라 일컫는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작명입니다. 탄핵에 이를 정도로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 건 누구보다도 먼저 보수가 분노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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