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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4 18:33 수정 : 2017.01.04 20:52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새’ 대통령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묻고 싶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무엇이 달라질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당장 좋아지지는 않아도 꿈을 꿀 수는 있을까?

나는 스스로 낙관주의자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결선투표에다 이합집산만 무성하고, 인기투표나 다름없는 단답식 여론조사가 곧 대통령을 결정할 기세다. 누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 달라진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할 수 없이 그들이 새로운 약속을 하도록, 그래서 다음 정부를 바꿀 수밖에 없도록 압력(힘)을 만들 틈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정책 선거’를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라. 곧 난무할 백과사전식 정책 공약은 다 믿기도 어렵고 후보 사이에 큰 차이도 없을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그리고 그 선거 결과인 박근혜 정권에게 공약은 그냥 겉치레가 아니었을까. 대통령에게는 한두 가지 정책보다 사회(국가가 아니라) 비전과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종 선언보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 요체라는 점도 덧붙인다.

그 비전과 철학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 걱정하는 진짜 이유다. 시간이 부족해서 기초도 검증하기 어려운데다, 공산당만 아니면 우리 지역 출신을 따라가겠다고 할 정도로 원초적 본능이 압도한다. 이런저런 약속이 늘어나지만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진정을 알기도 어렵다. 이 마당에 비전과 철학이라니 시대착오가 아닌가 싶어 주장하기도 조심스럽다.

남은 희망이라면, 지난 몇 달 동안 시민들이 표출한 민주적 역량에 기대한다. 시민이 새로운 비전과 철학의 주체가 될 수 있으니, 대선 후보와 그 소속 정당에 묻고 요구하기에 충분하다. 어떤 정치 지도자, 비록 대통령이어도 그는 시민의 정치의지를 끌어내고 다듬는 ‘향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시민의 요구를 감각하고 내면의 의지로 끌어들여 다시 내놓는 대선 후보의 역할이 절실하다.

비전은 날카롭고 철학은 힘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가운데 특별히 불평등에 대한 것을 묻고 싶다. 빈부의 구분 없이 모든 나라가 당면한 역사적 도전이라 해서 흉내나 내는 것이 아니다. 금수저, 흙수저가 온 사회를 뒤흔든 것이 바로 얼마 전이 아닌가. 우리 안에서도 불평등은 켜켜이 쌓여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이 되었다.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가진 나라다. 불평등이 심한 순서로 선진국 중 첫째 둘째를 다투고, 악화 속도는 단연 최고다. 소득과 재산, 교육, 지역 불평등은 몸을 통해 드러나는바, 그 결과인 수명의 불평등도 사고가 날까 두렵다. 2015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서울 강남 부유층이 강원도 어느 군 저소득층보다 평균 15년을 더 산다. 20%에 가까운 생명의 격차가 믿기는가?

흙수저 논쟁은 시대의 아픔이 저절로 드러난 신호음 같은 것이다. 수면 아래에서 더 깊어지는 고통들은 이렇게 묻는다. 이런 불평등을 두고도 살만한 사회라 할 수 있나? 더 악화하는 불평등에도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을까? 몇 가지 미봉책으로 저출산과 자살을 해결할 수 있는가?

대선이라 한들 중요하지 않다면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박정희·박근혜 체제를 넘어 ‘새’ 나라로 간다고 믿는다면, 응답은 분명해야 한다. 더 평등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전과 힘 있는 철학을 내고 경쟁하라. 당신들의 그 꿈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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