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9 18:27
수정 : 2017.01.09 18:52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새해 벽두의 티브이 토론에서 짧은 경제 논쟁이 있었다. 유승민 의원은 경제 정의가 성장의 해법이 되지 못할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회의 공정한 분배가 성장의 필요조건이라고 반박했다. 티브이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는데, 엉뚱하게도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데만 열심이었던 한 출연자에 대한 성토 때문이었다.
경제 논쟁과 관련해서는 유승민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조금 더 많아 보였다. 그쪽이 경제 문제에 관한 통념과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밥그릇을 나누기보다는 키우는 것이 우선이고, 밥그릇을 키우는 건 보수가 잘한다는 믿음이 퍼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그 믿음은 편견일 뿐이다. 미국에서 소득분배가 개선된 것은 민주당 집권기였고, 성장률 또한 진보 쪽이 높았다. 1947년부터 2013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은, 민주당 대통령 때는 4.35%, 공화당 대통령 때는 2.54%였다. 민주당은 고용·주가·실질임금 등 지표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보였다. 상황은 우리도 비슷하다. 역대 정권의 성장률을 보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각각 5.3%와 4.5%로, 3.2%와 2.9%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압도했다. 복지·민생은 물론 재정건전성·수출·주가 등 보수의 목소리가 큰 부문에서도 진보 정부의 성과가 더 높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정책적 우선순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당별로 정책의 차이가 분명히 있었고, 그 차이가 경제 전반에 유의미한 결과를 낳았다. 미국에서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고용에, 공화당은 물가안정과 부자감세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고, 그것이 성과의 차이로 연결된 것이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민주당 집권기에는 유가충격이 덜했고, 생산성이 올랐으며,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도 더 낙관적이었다. 즉, 양당 간 성장률 격차 중 절반 정도는 이처럼 순전한 ‘운’으로 여겨질 수 있는 요인들로 설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동 정세, 생산성, 소비자 기대심리 등의 차이 역시 양당의 정책적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공화당의 호전적 외교정책, 민주당의 경쟁촉진·규제강화·증세 정책은 큰 차이를 보인다.
장기적인 성장률은 정책보다는 제도, 곧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용되는 경기 규칙과 관련이 깊다. 연줄을 동원해 지대를 뜯어먹는 선택과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조직 혁신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인생 중 다수의 국민들이 어느 쪽에 재능을 쏟을지는 경제제도에 달려 있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경쟁을 공정하게 관리하며, 경제적 기여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규칙을 세우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의 민주화만으로 경제적 번영이 약속되지는 않는다. 제도가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 작동된다는 믿음, 곧 공공 신뢰가 수반되어야 한다. 안토니오 제노베시와 같은 수세기 전 시민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신뢰는 상업의 영혼이며, 국민경제의 번영을 위해 공공 신뢰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이들 시민경제학 전통에서 공공 신뢰는 시민사회와 시민경제 속에서 이웃과의 지속적인 만남과 접촉을 통해 계발되고 고양되는 어떤 것이다. 다시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신뢰는 모르는 사람, 자신과는 다른 세계관과 자원을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될 때 가장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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