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1.16 18:20 수정 : 2017.01.16 18:49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아진 듯 보이고,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면서, 현재 만 19세부터 부여하는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청소년을 포함해 만 18세로 선거권을 낮추는 데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미 다른 분야에서는 성인이며, 청소년들이 촛불을 통해 광장에서 보여준 높은 정치의식이 만 18세 투표권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학생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기 주관이 없으며, 대다수가 고등학생이라서 선거연령이 낮아지면 교사를 포함해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편향된 특정 사상을 주입해 꼭두각시를 만들 것이라는 근거를 들며 비판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히 선거권을 한 살 낮추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자격 있는 18세 이상의 성인들이 만들어온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자격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나라는 온갖 반칙과 패권이 지배하는 비정상이 구조화된 박정희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국가였다.

우병우, 김기춘으로 대표되는 머리 좋은 관료들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자를 중심으로한 견고한 카르텔을 만들었고, 그 체제의 유지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들은 똑똑할지는 모르나 명령이나 지시 없이는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자율적 개인이기를 포기했다. 이상한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설립조차 어려운 삼성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고, 그러한 기업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데 국민연금이 동원되고, 대학 이후 청소년들은 그 삼성에 입사하려고 경쟁하는 체제가 되도록, 존재를 배반하는 투표를 해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이 증명하는 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 자기 삶을 책임지고 대한민국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공화국이 되도록 하는 결정과 행동을 했느냐와 직결되지 않음을 말해준다.

두 번째 질문은, 한 사람의 성숙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과 관련된다고 할 때,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성장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청소년은 공부를 해야 하는 나이이므로 모든 것을 대학 이후로 미루고 공부만 하라고 가르쳤다. 이 속에서 학생들은 듣기만 하고 말은 하지 말라, 기쁨은 느끼지 말고 이해만 하라,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정치에 신경 쓰지 말고 단지 입시를 위한 토론과 논술 속에서만 주권자가 되고 실제 삶 속에서는 정치를 혐오하라는 말을 따르며 공부만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교육은 자기계발을 통해 성공하는 사적 개인을 길렀을 뿐, 타자에 공감하는 공적 시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으며, 일상의 삶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시각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부터 유신 독재와 군부 독재 시기를 거쳐 촛불 광장까지 동행해온 사람들의 구체적인 얼굴들 속에 나이는 없다. 동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며 같이 살아가는 얼굴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광장의 요구는 만 18세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논의를 넘어서서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에 대한 참여를 보장하고, 교육이 자기계발을 넘어 공유와 협력하는 인간과 인간의 연대, 상생의 삶을 촉진하는 앎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거권의 문제는 학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과 정치적 논의가 치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 보장, 그리고 주권자로서 보다 많은 권리의 문제를 헌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 개헌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