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06 18:37
수정 : 2017.02.06 19:04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탄핵심판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대선 주자들의 경제 공약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경우에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이 눈에 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우에는 증세, 기본소득, 토지배당으로 양극화와 정면대결하려는 시도가 주목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정부가 민간의 창의를 북돋울 ‘기반 조성자’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박정희식 정부 주도형 산업정책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고 시민 참여와 협력을 역설한다.
이 네 후보는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을 대표하고 실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정치인이다. 이들은 특권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워졌던 그동안의 경제정책을 바꾸는 데도 적극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에 관한 시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안철수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정부에 비판적이다. 자신의 돈을 걸지도 않고 암묵적인 현장 지식도 없는 관료들이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희정 지사가 정부 주도 방식에 비판적인 데는 정치적 이유도 있을 듯싶다. 우리에게는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규약을 만들어 ‘공유지’(commons)를 효과적으로 가꾸고 관리하며 오랫동안 공동으로 이용했던 자치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활동을 대신 하면서 시민의 주인의식과 소속감이 시들었고, 공동의 문제해결 능력도 약화되었다. 정부의 확대가 시민의 참여와 협력을 몰아내는 것은 세계적 현상으로,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지피에스(GPS)·터치스크린·음성인식 등과 같이 아이폰을 ‘스마트’하게 만든 핵심 기술들은 정부 자금으로 개발되었다. 시민정신의 쇠퇴는 정부의 영역이 커져서가 아니라 정치가 시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두 정치인의 인식이 현실의 시장과 정부와 시민사회에 대한 냉철한 관찰과 판단에 기초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책은 ‘목표’와 ‘수단’으로 대별된다. 국가적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 ‘목표’를 수립할 때는 다수 국민의 이익과 공동체의 장기적 미래라는 관점에서 삶의 더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세워진 목표는 강력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실천할 ‘수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정책의 ‘적응 능력’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진화경제학이나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말이다.
‘스마트한 진보’는 목표를 달성시켜 줄 여러 패키지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는 어떤 해법이 실제로 유효할지를 예측하기 어렵고, 대규모로 시행된 정책을 되돌리기도 어렵다. 이 점을 고려해 각각의 패키지를 소규모로 실행해보고, 잘 작동하는 검증된 정책을 중심으로 규모를 늘리자는 것이다. 이때 다양한 구체적 정책 패키지들에 기업이나 시민 등 민간이 참여할 여지를 확대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도 높이고 정치와 경제의 통합도 꾀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이 경우 사회서비스 확충과 기본소득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 양질의 돌봄서비스 제공과 좋은 일자리 제공이라는 목표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동육아 협동조합 중 어느 쪽에 자원을 더 투여하는 게 바람직한지도 자연스럽게 알아갈 것이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링컨’의 꿈이 현실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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