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13 18:25
수정 : 2017.02.13 19:00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마련되었고,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삼권분립, 법치주의, 비판과 토론 등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와 원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광장으로부터 표출되는 민심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참여와 직접민주주의를 향하고 있다. 국민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정부가 여론을 존중하고 그에 맞춰 정책을 시행하고,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고, 여러 형태의 정치적 입장들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분노의 이면에서는 지난 10여년의 역사, 좀 더 나아가 우리가 해체하지 못한 박정희 패러다임이 있다.
민주주의가 절차에서 멈추게 되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공익을 해친다는 이유, 다른 사람들의 안전이라는 논리로 공권력에 의해 제한된다. 정부 정책, 고위 공직자, 정치인 등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의 자유는 명예훼손죄라는 합법적인 법률에 의해 제한되기도 하며, 법치의 이름으로 정당이 해산되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오히려 침해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모두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고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런 점에서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2017년 주요업무방향을 민주시민교육과 복지로 모으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특히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조희연 교육감을 중심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일보전진을 고민하면서 강제교화 금지, 논쟁성 재현, 학습자의 이익과 관심을 고려해야 한다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 3원칙을 한국적 상황에서 재맥락화하려는 흐름은 기존의 민주시민교육 교재를 개발하고 교사 연수를 실시하는 것을 넘어서는 매우 중요한 흐름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방향은 더욱 많은 선택권을 보장하면서, 보호하는 데 맞춰져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민주시민교육은 지식의 전수나 집단적 가치의 확산이라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향유를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비판이 있어야 한다. 그에 필요한 용기와 의지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퇴보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퇴보하면 상명하복 원리가 강조되며, 사회 전체적으로 군대화되고 관료행정이 지배하게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정치사회적 과정과 갈등에 참여하면서 개개인의 판단력을 기르게 하고, 자기 권리와 관심에 대한 판단력과 이해력을 배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 논쟁의 선정, 선거권과 같은 선택권이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선택권이 없이 선택만을 하는 민주시민교육은 개인적 기억과 해석을 논쟁을 통해 사회적 기억으로 통합하지 않고, 일률적인 도덕적 판단에 근거하여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고, 사회의 구조적 조건들 속에서 각 집단과 개인에게 부여된 역할책임과 행동반경에 순응하는 교육으로 변질되고 만다.
어느 정치철학자의 지적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도 충분히 야만적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가해자가 되었던 부담스러운 과거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고 현재의 권력과 관련한 문제를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과 살인자로 만들어갔던 구조들, 상황들에 대한 통찰을 얻고, 우리가 저항자가 될 수 있다는 내적 경험을 통해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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