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01 17:48
수정 : 2017.03.01 20:52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박근혜 정부는 실패했다. 드러난 헌법 위반과 위법, 국정 혼란은 그 자체로 실패지만, 숱한 다른 실패를 낳은 원인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파탄, 세월호 참사, 가계부채, 주거비 폭등, 국정교과서 등 정치와 정책 실패는 한 손으로 다 꼽기 어렵다.
나는 목록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메르스 사태.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 다 같이 견뎌야 했던 그 고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1만6천명이 넘는 사람이 격리되었고, 186명이 확진을 받았으며, 38명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국내총생산이 10조원 넘게 줄었다고 추정할 정도면, 꼭 환자가 아니어도 온 사회와 사람이 같이 앓았다는 뜻이다.
인재이자 사회적 재난이었음도 잊을 수 없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 중동을 벗어나 한국 땅에서 그토록 많은(세계에서 둘째로 많다) 사망자를 낸 것이 증거다. 정부 당국은 오판했고, 초기 대응에 허둥댔으며, 시민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최고 리더십의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전염병이 ‘재난’으로 바뀐 상황에서 그는 정치·사회적 위기를 통제할 정도로 유능하고 부지런하지 못했다. 정부와 민간을 동원하고 조율하며 방향을 잡아야 했지만, 그 후라도 새로운 대응체계를 만들어야 했지만, 끝까지 실패했다.
이 실패를 호출하는 이유는 정치, 더 구체적으로는 대선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대선 주자 대부분이 메르스의 교훈을 잊지 않았으리라 낙관했다. 전염병과 생물학적 위협, 또는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앞다투어 약속하지 않을까? ‘제2의 메르스 사태 예방’, ‘국가방역시스템 선진화’, 또는 ‘공중보건 위기대응체계 구축’과 같은 공약을 기대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
제2의 메르스 사태 예방이 어떻게 대통령 ‘어젠다’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자세하게 설명할 여유는 없으니 간단하게 두 가지 설명을 근거로 삼는다. 하나는 열흘 전쯤에 빌 게이츠가 한 말. “정부가 전쟁을 준비하는 수준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전염병으로 수천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같은 회의에 참석한 모든 전문가가 이 말에 동의했다니, 전염병 관리는 또 하나의 ‘안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전염병이 이런 것이라면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최근 경험한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방역 실패는 반면교사다. 백신 개발, 검역, 이동 통제, 살처분, 축산물 관리 등 가축 방역에 해야 할 일은 많고 또 다양하다. 전체 정부와 사회가 협력하지 못하면 실패가 당연하다. 사람 방역도 비슷한 이유로 실패하지만, 정치, 사회, 경제에다 윤리까지 보태야 하니 더 복잡하고 종합적이다. 뎅기열이든 지카든, 아니면 또다른 이상한 이름의 전염병이든 범정부, 초정부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대통령이 아닌 그 누가 이를 움직일 수 있을까?
메르스 사태의 실패와 사후 대책이 더 중요한 ‘자기 근거’일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쓰느라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처럼 헤매지는 않겠지만 장담하기도 어렵다는 것. 인력과 재정이 부족한데다 역량도 모자라는 상태에서 ‘각개약진’으로는 어림없다. 중앙부터 시·군·구까지 고루 인력과 재정을 짜맞추는 국가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새로 누가 어떤 책임을 어떻게 질지, 이제 약속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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