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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2 19:17 수정 : 2017.03.22 21:44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0시 1분 전. 1962년 10월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 그 정점은 10월26일. 미국 전략공군사령부는 전쟁준비상태를 데프콘-2로 올리고 핵전쟁 태세에 들어갔다. B-52전폭기 23대가 공중에서 언제라도 소련을 타격할 태세를 갖췄고, 대륙간탄도미사일 145대도 발사 준비를 마쳤다. 방공사령부도 핵무기를 장착한 전투기들을 비상대기시켰다.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침공이라는 최후의 수를 만지작거렸다. 체 게바라가 지적한 대로 “쿠바 공격은 바로 핵전쟁”이 될 상황이었다.

이 위기는 왜 시작됐을까? 대부분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이 배치됐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쿠바에 소련 미사일 기지들이 건설되는 와중에 소련 선박이 핵미사일을 쿠바에 수송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련 미사일이 미국 코밑에 배치되는 안보위기 사태를 막기 위해 케네디 대통령이 해상봉쇄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소련이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련 핵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됐다고 해서 정말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았을까?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루기 위해 당시 백악관 안에 설치됐던 ‘실행위원회’의 내부 논의는 뜻밖의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쿠바에 소련 미사일 40기가 배치된다고 해서 전략균형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전략핵탄두 5천여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소련의 핵 보유고는 300기 정도에 불과했다. 소련이 이를 340기로 늘린다고 해봤자 전략균형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다. 맥나마라 장관은 냉정했다. “군사력 균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쯤에서 묻는다. 북이 핵무기를 배치했다고 해서 한반도 군사력 균형에 변화가 있을까? 미국은 현재 4500기 정도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 핵탄두를 투발할 수단도 미사일, 전폭기, 잠수함의 ‘3종 세트’를 갖추고 있다. 북이 10여기, 혹은 그 이상의 핵무기를 배치한다고 전략균형에 변화가 생길까? 미국이 누리고 있는 압도적 핵 억지력이 무너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 일각에서는 북핵을 논의할 때 유독 미국 핵을 열외로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군대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군의 핵군사력을 포함한다면 맥나마라 장관의 평가는 냉정할 것이다. ‘10’ 때문에 전략균형이 깨졌다기보다는 ‘4500’에 맞서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가 ‘10’이라고 보는 것이 냉정한 평가가 아닐까.

쿠바가 소련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한 것은 그 1년 전 있었던 피그만 침공 사건 때문이었다. 미국이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던 이 사건은 쿠바 정부의 불안감을 극대화했다. 그 결과 카스트로 정부는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기로 했다. 핵미사일 40기로 미국의 군사적 침공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북에 대한 선제타격론, 참수작전 등 군사적 압박도 피그만 침공 사건과 같은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 아닐까.

케네디 정부 실행위원회가 해상봉쇄라는 강수를 둔 이유는 사실 국가 안전보장이 아니었다. 국내 정치 때문이었다. 1962년 중간선거 유세가 한창이었던 10월, 쿠바에 소련 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다는 뉴스는 ‘강한 안보 후보’ 케네디에게 최대의 정치적 위협이 됐다.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됐다. 그 결과는 ‘0시 1분 전’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주는 여러 교훈을 보지 못한다면 한반도 시계가 ‘0시 1분 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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