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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12 18:37 수정 : 2017.04.12 20:42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요즘 고등학생들은 3년 배울 것을 2년에 끝내고 3학년 때는 문제만 푼다. 그래서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수학만큼은 최소한 1년을 선행학습 시켜야 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수학 선생님 두 명이 번갈아 들어와서 1학기 진도와 2학기 진도를 한꺼번에 나가기 때문에, 선행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게 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본 친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포자’가 증가하는 이유가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라고만 생각하고, 교과 내용을 줄이고 시험도 쉽게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학을 쉽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교육개혁은 문이과를 통합하고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인데, 교과서마저 쉬워지면 ‘미분을 모르는 공대생’이 양산될 수 있다. 대학들은 이런 학생을 걸러내기 위해 새로운 관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공교육으로는 뚫을 수 없는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사교육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럴 바에야 고등학교를 4년으로 늘리면 어떨까? 3년 배울 내용을 3년 동안 제대로 배우고 마지막 1년은 자유학년으로 해서, 대학에 갈 사람은 입시 준비를 하고 사회에 곧장 진출할 사람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과목을 듣도록 말이다. 고등학생들을 학교에 1년 더 붙들어 두면 그해에는 대학 신입생이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 문제는 초등과정을 1년 줄이거나(5-3-4) 1년 당겨서 만 5세에 시작하면(6-3-4) 간단히 해결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등학교를 4년으로 늘리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입시를 구실로 학부모의 압력과 교육당국의 묵인 아래 이루어지는 파행적인 학사운영을 뿌리 뽑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제발 1학기에는 1학기 진도를 나가고 체육 시간에는 체육을 배우자. 그리고 강제 야자 따위는 좀 없애버리자. 둘째, 대학에 가지 않을 학생들은 입시 준비하는 친구들의 들러리를 서는 대신 각자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또 고교과정을 제대로 이수했기 때문에 뒤늦게 공부를 다시 하기도 쉬워진다.

셋째, 진로지도와 수업준비를 분리함으로써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다. 현재 고3 담임교사들은 수업은 수업대로 하면서, 학교생활기록부다 추천서다, 학생마다 챙겨줘야 할 게 어마어마하다. 넷째, 학급 수가 그만큼 증가하므로 중등교원 적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섯째, 사교육의 우수한 인력을 공교육으로 흡수할 수 있다. 현재 사교육 시장에는 정규교사 못지않게 유능하고 열정적인 강사들이 많이 있다.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자격시험, 연수 등) 이들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인다면 공교육의 역량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학년 동안 학생들은 가까운 대학에서 미리 관심 있는 과목을 청강하면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다.

이 제안이 고등학교를 없애고 진로학교를 신설하자는 안철수 후보의 제안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나는 안철수 후보 식의 개혁은 전반적인 학력 저하와 함께 계급 재생산의 심화를 가져올 거라고 예측한다. 진로학교와 고등학교의 가장 큰 차이는 공통된 교과의 유무이다. 공통된 교과가 없다면 신입생 선발은 대학의 자체 기준에 따라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대학에 가고 싶은 학생들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사교육 시장을 헤매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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