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7 18:41
수정 : 2017.05.17 20:55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이제 뉴스를 보는 게 행복하다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하지만 중대한 질문을 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의 향후 외교안보정책 방향을 결정지을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16일 정의용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과 매슈 포틴저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북핵문제 해결에 관한 4가지 사항’이 의심스럽다.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묻는다.
“궁극적 목적은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라고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 합의, 또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정책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였다.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합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부터 제네바합의, 6자회담의 합의까지 모두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였다. 왜 유독 이번 합의의 궁극적 목적은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가? 거기에서 물러선 것인가? 그렇다면 왜 후퇴했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소위 ‘모든 옵션’을 검토했던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대북정책 기조를 확정하면서 군사적 수단으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옵션은 제외됐다.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코츠 국가정보국장이 발표한 합동성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은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우리 동맹국 및 역내 파트너들과의 외교적 조치를 추구”한다고 명기했다. 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인 비핵화”를 추구한다고도 했다. 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고 되어 있다. 한반도 평화를 생각한다면 명백한 후퇴다. 왜 ‘제재와 대화를 동원한다’고만 하지 않았는가? 다른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인가?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다는 얘기인가? 4가지 합의사항에 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명기되지 않았는가?
사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다는 것 자체도 근원적 모순을 안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도 마찬가지다. 최대의 제재를 가해서 ‘대화’의 장에서 북의 굴복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라면 외교도 아니고 대화는 더욱 아니다. 협박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적대관계’의 청산을 요구하는 북의 입장에서는 적대적 정책을 더욱 강화해 항복을 받아내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북은 더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북이 그럴 명분을 강화해줄 뿐이다.
안보리는 북의 미사일 시험을 비판하는 성명에서 북은 “즉각 구체적인 행동을 통한 진지한 비핵화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한 가지만 추가하면 된다. 미국도 “즉각 구체적인 행동을 통한 진지한 평화의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북은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관여’를 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이런 양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악수로 그들의 주먹을 펴게 하여 그들끼리도 악수를 하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대화로 올바른 여건을 만들어야지, 한국도 주먹을 휘두르며 ‘대화’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이번 합의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보다도 후퇴했다면 중대한 문제다. 기우이길 바란다.
북의 미사일 시험 후 보수언론은 묻는다. 이래도 대화냐? 단호히 대답해야 한다. 그래서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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