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24 18:38
수정 : 2017.05.24 20:27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며칠 전 친구 어머니가 급성 담낭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상태가 좋지 않아 며칠 출근도 못 하고 환자를 돌본다더니, 한참만에 만난 자리에서 진료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며 울상이다. 대학병원에 열이틀을 입원했는데, 진료비가 1천만원 남짓, 그중 본인부담금이 400만원이나 된단다. 이렇게나 많이 내야 할 참이면 이게 무슨 보험이냐, 건강‘보장’ 제도가 왜 이 모양이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서민이 갑자기 400만원 마련하기가 그리 쉽나, 건강보험이 진료비 할인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만이 당연하다 싶다. 늘 다니는 외래나 가벼운 입원이야 큰 문제가 아니라지만, 병과 사고는 예고 없이 일상에 결정적으로 개입한다. 갑자기 큰 병이나 사고가 나면 빚을 져야 하고, 자칫 가계 파탄이나 ‘빈곤화’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이른바 ‘메디컬 푸어’!
소득보다 의료비 지출이 너무 많은 것을 ‘재난적 의료비’라 일컫는데, 병원비가 부채, 가계 파탄, 빈곤을 부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재난이 되지 말라고, ‘안전망’ 노릇을 하라고 만든 사회제도가 건강보험이지만 현실은 엉성하다. 그 친구는 저축이 좀 있는데다 형제들까지 나서서 ‘가족 복지’로 보완했으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오죽하면 정부와 건강보험 당국이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운영해야 할까.
기왕 말이 나왔으니, 건강보험공단이 전하는 이 사업의 내용을 대신 홍보한다. 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데, “질환 기준은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비수술 포함), 희귀난치성질환 및 중증화상이며, 소득기준은 가구원수별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확인한다.” “입원 본인부담금이 200만원(의료급여·차상위 100만원) 이상 발생한 경우, 최대 2천만원 한도 내에서 입원 및 항암외래진료 합하여 180일까지 지원 가능하며, 50% 수준의 의료비를 지원”한다.
나도 해당할까 한번 따져 보시라. 이 또한 부분적인 추가 안전망에 지나지 않는다. 저소득층, 일부 질환, 소득 대비 과다한 지출이라는 기준을 모두 만족할 정도면, 실제 지원이 필요한 많은 사람은 빠져나간다. 재난적 의료비는 짐작보다 많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평균 다섯 가구 가운데 한 가구꼴로 재난적 의료비를 경험했다. 대부분은 ‘각자도생’으로 재난에 대처해야 한다.
저성장과 고용불안의 시대, 그 무엇보다 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절실하다. 건강보험을 크게 개혁해야 한다면 이것부터 손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새 정부가 재난적 의료비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한데다, 다른 대선 후보의 공약도 비슷했다. 적어도 정치적 동력은 충분한 셈이다. 구체적 개혁 방안은 백가쟁명이지만, 나는 본인부담을 크게 낮추어 재난을 예방하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상투적이지만, 모든 개혁은 쉽지 않다는 말을 보탠다. 누가 더 내고 누가 더 쓸 것인가. 본인부담을 낮추려 건강보험 재정을 바꾸는 일은 여럿의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 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재정 사정이 조금 여유가 있는 지금이 그나마 적기라는 점이다.
큰 방향은 분명하다. 각자 돈을 내는 민간보험과 개인 부담을 건강보험 ‘공동구매’로 전환해야 한다. 민간보험료로 내던 돈을 건강보험료로 돌리고, 개인 부담도 ‘모아서’ 전체가 같이 쓰는 쪽으로 바꾸자는 뜻. 건강보험이 건강보험다워지는 것. 새 정부가 주도자와 거간꾼 노릇을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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