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29 18:39
수정 : 2017.05.29 19:04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좋은 사회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는 인류의 영원한 과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들은 사람들의 덕성을 고양하고 도덕감정을 북돋우는 것이 방법이라고 믿었다. 반면,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한 경제학자들은 사유재산권과 경쟁적인 시장이 갖춰지면 도덕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더라도 가격과 인센티브의 작동을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이 달성되는 비전을 제시했다.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스라엘의 어린이집 사례 등을 통해 이러한 비전의 문제점을 추궁한다. 이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찾으러 늦게 오는 부모들에게 소액의 벌금을 매겼는데, 이를 ‘요금’으로 받아들여 늦게 오는 사람이 오히려 더 늘어났고, 벌금 제도를 폐지한 뒤에도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인센티브가 공감·동정·정의·호혜·공정·이타심과 같은 우리의 도덕감정을 몰아내고 사회적 규범을 훼손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시장원리가 일상의 구석까지 침입해 가치와 규범의 타락을 재촉한 끝에 사회를 각자도생하는 ‘사막’으로 변질시킬 위험을 경고하는 사례로도 널리 회자되었다.
그러나 인센티브가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2002년 아일랜드에서는 비닐 쇼핑백 사용에 소액의 세금을 부과해 그 사용이 94%나 줄었다고 한다. 샌타페이연구소의 새뮤얼 볼스는 이 두 사례의 차이를 도덕적 메시지 유무에서 찾는다. 전자의 경우 벌금만 도입했을 뿐 그 징벌의 정당화가 없었기에 지각은 옳고 그름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벌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로 여겨졌다. 반면, 아일랜드에서는 부과금 시행 전에 비닐의 유해성을 알리는 공론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그것이 비도덕적 행위임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실험경제학의 연구들을 보면, 인센티브와 메시지를 어떻게 배합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린이집의 사례에서 벌금제도의 도입과 함께 시간 엄수가 왜 중요하고 지각이 왜 부끄러운 일인지를 분명히 인지시키는 공론화 과정이 병행되었다면 지각은 확실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늦는 것은 나쁘다”는 메시지만 제시되는 것보다는 이러한 호소에 벌금이 더해졌을 때 도덕적 메시지의 효과가 한층 강화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도덕과 당위만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문제제기는 옳았다. 그러나 도덕감정의 도움 없이 가격과 인센티브만으로 경제적 조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바람은 불완전한 꿈이었다. 또한 좋은 사회를 이루는 데 도덕이 요구된다는 철학자들의 통찰은 옳았지만, 잘 설계된 인센티브가 도덕감정을 도리어 고양시킬 수 있다는 점은 간과되었다.
볼스에 따르면, 좋은 시민이 결과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칙을 설계하는 것이 좋은 사회의 결정적 관건이다. 이때 좋은 시민이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를 가꾸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공론화를 이끄는 도덕적인 인간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먼저 협력하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응징함으로써,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도 선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압박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시민은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목적이자 좋은 사회, 좋은 정부, 좋은 시장의 전제조건이다. 그것을 ‘시민정신’이라고 부르든 ‘애국심’이라고 부르든, 이들의 도덕감정에 더 큰 명예와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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